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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대중 민주주의의 한계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06 17:01

수정 2016.07.06 17:01

[fn논단] 대중 민주주의의 한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으로 인한 파장을 보면서 필자는 대중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사실 EU 체제의 근원적 불안정성을 감안하면 브렉시트가 장기적으로 영국에 옳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는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가져올 단기적·장기적 영향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 그리고 그 영향을 영국 사회가 어떻게 수용하고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상당히 부족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브렉시트 찬성 측을 대표하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국민투표에서 이긴 이후 오히려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총리 경선에 불출마하기로 하였다. 또 다른 대표적 브렉시트 찬성파인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 대표도 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 선거에서는 이겼는데 정치적으로는 궁지에 몰리는 이 비상식적인 결과는 영국 내에서 브렉시트의 후폭풍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분히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 직접민주주의의 대상이 된 국가적 어젠다가 장기간에 걸친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가 결여된 상태에서 다수 대중의 정서에 의해 결정된 사례가 이번 브렉시트 사태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대중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가 나왔지만 막상 그 결과에 대해서는 사회적 불안감이 더 커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브렉시트에 대해 정치적 공방과 구호는 있었지만 충분한 사회적 숙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향후 2년간의 EU 탈퇴 협상과정을 거치면서 형식적으로는 영국이 EU를 탈퇴하지만 내용적으로는 EU 회원국과 유사한 지위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도 바로 이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대중민주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한 20세기 초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따라서 특정 어젠다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상당한 지적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그 어젠다가 한 국가의 장래에 정치적.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어젠다일수록 섣불리 대중에게 의견을 물어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일은 삼가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대중의 최종승인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그 이전에 깊이 있는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서 다수의 선택이 큰 무리 없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민주주의 발전 수준도 높은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상위소득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소득 국가에서 덜 민주적이거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더 많이 관찰된다. 하지만 대중의 참여가 잘 보장된 민주주의가 항상 국가경쟁력 제고에 부합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국가경쟁력은 효율성을 근간으로 하지만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적 경향을 가진다.
민주주의의 포퓰리즘적 요소가 효율성을 압도할 경우 대중의 선택에 따른 의사결정은 국가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한 나라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로 자본축적 정도, 노동력의 질, 혁신능력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절제되고 성숙한 대중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는 그 사회의 능력도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사회도 그런 능력을 가졌는지를 자문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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