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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대통령과 딴 길 가는 공정위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06 17:01

수정 2016.07.06 22:26

[이구순의 느린 걸음] 대통령과 딴 길 가는 공정위

"지금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은 물론 우리 산업 전체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찌 들으면 '애원'으로도 들릴 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기업들에 구조조정을 당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을 불허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CJ헬로비전의 23개 케이블TV 서비스권역 중 SK텔레콤과 M&A 이후 시장점유율이 60%를 넘게 될 권역이 15개가 되기 때문에 경쟁제한성이 걱정된다는 게 이유다. 경쟁제한성의 문제는 기업 간 경쟁이 축소돼 요금이 인상되고,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것이다.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하면 유료방송 요금이 인상될 수 있다는 게 공정위의 걱정인 셈이다.

과연 현실성 있는 걱정일까. 적어도 국내에서는 유료방송 요금인상이 사실상 불가능한 게 문제다. 심지어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유료방송 요금이 현실성 있게 인상되도록 시장구조를 바꾸는 것을 주요 정책목표로 삼고 있을 정도다.

국내 유료방송은 너무 낮은 요금과 더 이상 요금을 올릴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병들어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통신 업계와 유료방송 업계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M&A가 국내 미디어산업 전체 구조조정의 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벌써 수년째 시장에 내놔도 사겠다는 기업이 없는 케이블TV 회사가 여럿 있는 데다 케이블TV 가입자는 끝없이 줄어들어 돌파구가 없다. M&A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료방송 시장이 재편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케이블TV 시장 경쟁제한성 문제를 들어 M&A를 불허하면서 국내 미디어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막았다.

대통령과 정부가 선제적 산업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방송통신 업계가 시장 재편을 요구하고 있는데 왜 공정위만 대통령, 업계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M&A를 반대하는 논리가 있다.
경쟁하는 통신회사나 지상파 방송사들인데 "너무 큰 회사가 생기면 경쟁하면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게 반대 이유다.

그렇다면 따져보자. 경쟁사들이 두려워할 만큼 강한 기업을 여럿 만들어 산업경쟁을 상향 평준화해내는 것이 정작 정부가 할일 아닌가.

공부 잘하는 학생이 들어와 같은 반 학생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고 공부 잘하는 학생의 공부를 방해하는 선생님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국내에서 대형 미디어사업자 탄생을 막은 뒤 외국에서 들어오는 미디어 공룡들과는 누가 맞서 경쟁할 것인가.

공정위는 전원회의를 통해 최종 입장 결정을 남겨두고 있다.
공정위가 대통령의 생각과 다른 결론을 고집할지 두고 볼 일이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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