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차장칼럼] '폭력의 대물림'과 검찰

장용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10 17:47

수정 2016.07.10 17:47

[차장칼럼] '폭력의 대물림'과 검찰

"그 선배, 참 고약했지. 오탈자가 있으면 한꺼번에 잡아 줄 것이지 꼭 한 자씩 찾아내서 빨간 사인펜으로 X자를 죽죽 그어 보냈어. 그때는 타자기를 쓸 때라 처음부터 공소장 다시 친다고 고생 엄청 했어. 오탈자 한 자 때문에 말이야."

벌써 4년 전 사석에서 담소를 나눈 어느 검사장의 말이다. 대화 중에 우연히 어느 전직 고위 검사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약했던 선배의 '뒷담화'를 꺼내 놓았다. 그는 능력 있고 인정받는 선배였기에 말없이 따르긴 했지만 울컥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절대 그렇게 안하려고 했지. 꼭 그런 악습이 되물림된단 말이야."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숨겨놓았을 그의 말을 들으면서 동석자들은 모두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젊은 검사들은 하나같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분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요?" 당시 그 검사장의 부하로 근무하던 모 검사는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 검사장 역시 고약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모양이다.

미워하면서 닮아간다더니 그 역시 선배 검사의 고약한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닮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처럼 되물림되는 악습이 적지 않다. 아동학대를 경험한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게 되고, 선임병에게 모질게 당했던 병사가 후임병을 괴롭히게 된다. 독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닌 듯싶다.

문제는 이처럼 폭력과 악습을 대물림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행동에 잘못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도 똑같이 당했는데 왜 내 행동만 문제 삼느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최근 한 젊은 검사가 부장검사의 가혹한 언행을 견디기 어렵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초기 검찰은 '부장검사의 폭력이나 가혹행위는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부장검사가 숨진 검사를 매우 아꼈다는 말도 있었고, 동문에다 동향인 후배가 전입해 와서 매우 좋아했다는 전언도 있었다. 일부 검사들은 "요즘 젊은 검사들이 나약해져서 큰일"이라고 혀를 차기도 했다.

하지만 유족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실상은 전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도 과거에 그렇게 당하고도 참고 살았는데 왜 요즘 것들은 참지 못하느냐'는 생각이 배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선후배 사이에 가벼운 주먹질 정도는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물들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폭력에 둔감해지고 모욕에 익숙해진 검사는 피해자 편일까, 가해자 편일까.

ohngbear@fnnews.com 장용진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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