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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관치경제의 역설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10 17:47

수정 2016.07.10 23:12

[데스크 칼럼] 관치경제의 역설

관(官)의 시장개입이 도를 넘고 있다. 요즘 경제계에서는 정부 일부 부처에서 '전가의 보도' 격인 인·허가권을 앞세워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당국이 내세우는 시장 개입의 명분과 시장 간섭의 형태도 다양하다. 시장 개입의 대표적인 명분은 '갑질' '독과점' '도덕성' 등이다. 간섭 형태는 인·허가권을 전제로 한 기업 줄세우기에다 늑장행정, 심한 경우는 사업권을 박탈(회수)하기까지 한다. 어떤 경우는 기업을 앞세워 사실상 서약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독과점을 이유로 세계적인 노하우와 경쟁력을 갖추고 막대한 관광수입을 거두는 면세점을 하루아침에 문 닫게 하는가 하면 면세사업권을 내세워 줄세우기까지 한다. 백화점업계의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하고 '갑질' 관행을 차단한다며 해당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모아 놓고 대책을 발표하고 기업들의 '자율개선' 입장을 내놓으며 맞장구를 쳤다.

특정 홈쇼핑업체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로 납품기업들이 반발하자 다른 홈쇼핑업체 CEO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이들 납품협력업체 구제방안을 발표했다. 말이 '자율적'이지 강요나 다름없다는 게 해당 기업들의 속내다.

청와대의 서별관회의와 공정위의 SKT와 CJ헬로비전의 합병승인 불허 과정 등도 관치 논란을 부른다. 지난해 10월 열린 청와대 비공개 거시경제협의회, 이른바 '서별관회의'에 제출된 문건이 최근 공개되면서 관치경제 논란에 불을 댕겼다.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방안 정책결정이 비공개로 이뤄진 데다 이 정책이 실패로 귀결되면서 실패한 관치경제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의 'SKT.CJ헬로비전' 합병 불허 결정을 놓고는 '관치의 끝판왕'이라는 말까지 나돈다. 공정위의 이번 판단은 유료방송시장의 특성을 무시한 지나친 관치라는 것이다. 케이블방송의 태생이 지역독점에 있는 만큼 공정위의 독과점 우려라는 논리대로라면 현재 위기에 빠져 있는 케이블방송의 구조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공정위가 이번 인수합병을 사실상 불허하면서 지적한 경쟁제한, 소비자 선택권 제한이라는 지적도 관의 지나친 간섭이라는 것이다.

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은 미국의 민간연구단체인 헤리티지재단과 월스트리트저널이 조사해 발표한 '2016 경제자유지수'에 투영됐다.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27위에 머물렀다. 작년에 비해 2단계 올랐다고는 하나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기준으로 보면 하위권이다. 경제자유지수는 법치주의와 규제의 효율성, 정부 개입, 시장개방 등 4개 항목에서 경제활동과 관련된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가로막는 정부규제의 정도를 측정해 매긴다.

시장경제하에서는 시장 및 경제주체에 대한 관의 간섭(규제)이 적을수록 자유로운 거래가 활발해지고 창의적인 제품이 나와 경제가 산다. 그런 만큼 갑질 문제니, 독과점이니 하는 뭉치고 꼬인 문제도 경제의 주체이자 책임자인 시장에서 스스로 풀도록 맡겨줘야 한다. 자정기능이 없다고 판단되면 최소한의 간섭으로 길을 터주고 그래도 안될 때는 최후수단으로 직접 개입하는 게 맞다.
관치는 시장을 멍들게 한다.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해쳐 결과적으로는 기업,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1997년의 '금융국치'도 지나친 관치의 산물이다.

poongnue@fnnews.com 정 훈 식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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