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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한은과 국민연금의 공통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13 17:24

수정 2016.07.13 17:24

[fn논단] 한은과 국민연금의 공통점

우리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두 개의 공적기관이 있다.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이다. 표면적으로 큰 상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기관에는 독특한 공통점들이 있다. 먼저 이 두 기관은 아주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연금적립액은 2015년 말 기준 500조원을 넘어섰으며 2040년에는 적립금 규모가 23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니 가히 엄청난 규모라 할 것이다. 한국은행의 경우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발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보유자금의 규모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두 기관이 가진 또 다른 공통점은 활용 가능한 자금 때문에 외풍에 시달릴 위험성이 크다는 데 있다. 올해 들어 구조조정의 진행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한국은행은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을 위해 발권력을 동원하라는 요구를 받아왔다.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대규모 적립금을 공공임대주택의 건설과 같은 공공투자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으로부터 제기되었다.

기관의 존재 이유와는 거리감이 있는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간섭이 시도될 경우 해당 기관은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상황에 끌려들어 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간섭의 현실화 여부와는 무관하게 상당한 사회적 부담을 짊어진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아무것도 안했는데 의문의 1패를 당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유혹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대규모 자금을 관리하는 기관에 대해 외부로부터의 간섭이 찾아드는 것은 낯선 현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경험들은 자금 접근에 대한 편의성을 이유로 한국은행이나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것이 득보다는 실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이나 공적연금의 독립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은 설립 목적이 분명한 기관들이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의 수행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고 경기변동 위험을 완화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이다. 최근 들어 적극적인 통화정책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통화정책 행동주의의 추세가 해외 중앙은행들로부터 관찰되고 있으나 이 경우에도 중앙은행의 역할은 금융시스템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통해 금융회사의 위기가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데 중점을 둔다. 국민연금의 경우 가입자들의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되며,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투자수익률 제고에 높은 전략적 우선순위를 둔다.

구조조정의 진행을 위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이나 공공투자사업은 국회 동의를 거쳐 재정정책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구조조정에 투입된 자금은 대규모 손실의 위험성을 가진다. 손실이 발생할 경우 그 부담은 궁극적으로 납세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아니라 국회와 정부가 재정부담 확대에 관한 협의를 진행함이 타당하다. 공공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시장의 실패가 나타나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사업에 국민연금 적립금을 사용하는 것은 가입자들이 낸 적립금을 재정정책 집행을 위한 세금으로 둔갑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가입자들의 동의 없이 국민연금에 이러한 의무가 강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번거롭다고 피해갈 것이 아니라 올바른 원칙을 따르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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