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의 소비자경제]

한국 소비자는 봉?

최근 소비자문제 이슈로 언론을 장식한 것들 가운데 다수의 이목을 끈 것은 폭스바겐의 배기가스측정 조작과 관련한 리콜 및 손해배상 문제, 이케아 전복 위험 가구의 리콜 문제,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 소비자피해배상 문제 등과 같이 외국기업 상품에 의한 소비자피해 관련 문제들이었다. 다수 언론들은 외국기업들이 한국 소비자들을 봉으로 알고 차별취급하고 있다면서 정부나 소비자들의 강력한 대처를 주문했다. 예컨대 폭스바겐이 미국에서는 대규모 리콜과 함께 엄청난 배상을 하면서 한국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거나, 이케아가 미국과 중국의 소비자들에게는 리콜을 하면서 한국 소비자들은 외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이들 외국기업들이 우리의 관련 법규를 제대로 준수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을 차별취급했다기보다는 우리의 법제도에 의한 소비자권리가 그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외진출을 하는 기업들은 자신들이 투자나 생산, 상품판매 등 경제활동을 하는 국가의 법률을 준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 법규에 의한 소비자권리가 미국이나 다른 국가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데, 다른 국가에서와 동일하게 하라는 요구는 오히려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에 외국기업들에 대한 강력한 법집행으로 우리 소비자들에게 보상하도록 압박하라는 주장도 그다지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외국기업들이 법을 위반한 것이 있다면 형평에 맞게 집행을 해야지 법이 정한 수준 이상의 보상을 끌어낼 목적으로 무리한 법집행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법치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폭스바겐이 미국 정부와 소비자들에게 20조원가량 배상하게 된 것은 미국의 환경규제를 지키지 않아 끼친 손해에 대해 정부에 배상하고 환경규제를 지키기 위한 기존 차량의 개선비용에 대해 소비자에게 배상하는 것이므로, 폭스바겐이 우리의 관련 법규를 위반한 것이 무엇인지를 철저히 조사하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끼친 손해가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게 우선이다. 단지 외국에서 그렇게 하면서 왜 우리 소비자는 봉으로 아느냐고 주장하는 것은 감성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문제는 외국기업들이 우리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제대로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련 법규나 사법부의 소비자피해 배상에 대한 판단이 소비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하는 데 있고, 그것이 최근 사건에서 외국과 비교되면서 외국기업들이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즉, 외국기업들이 특별히 한국 소비자들의 권리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법제도와 관행들이 기본적으로 소비자 친화적이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외국기업들에 의한 소비자피해는 앞으로도 빈발할 수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기업규제 강화를 통한 정부 힘이나 감정적 대응으로 풀려는 생각은 매우 우려스럽다. 그보다는 소비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보다 쉽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yisg@fnnews.com 이성구 fn소비자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