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우리시대 '큰 바위 얼굴'이 그립다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17 16:52

수정 2016.07.17 16:52

[데스크 칼럼] 우리시대 '큰 바위 얼굴'이 그립다

남북전쟁 직후, 미국의 한 시골마을에 살던 소년 어니스트는 마을 앞산에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바위를 보며 자라왔다. 사람들은 그 바위를 '큰 바위 얼굴'이라 불렀다. 그리고 언젠가 그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이 사회를 훌륭하게 이끌 것이라는 예언을 믿었다. 어니스트는 "어서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며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을 닮을까 생각하며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소년이 어느덧 중년을 지나 노인이 되었다. 마침내 그 마을에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위인이 나타났다.
그 지역 출신으로 개더골드라고 불리는 돈 많이 번 거상이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재주는 뛰어났지만 탐욕스럽고 돈 앞에서는 인정이 없었다. 두번째 사람이 나타났다. 미국 전역에서 용맹하기가 이를 데 없다는 아주 유명한 장군이었지만 역시 지혜로움과 자비심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세번째 사람이 왔다. 올드스토니피즈라는 정치가로 유창하게 쏟아내는 언변과 다르게 권력과 명예만 좇는 사람으로 큰 바위 얼굴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네번째 사람이 왔다. 이 사람은 하늘이 내린 시인으로 불리는 천재적인 영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니스트는 오래전부터 그의 시집을 읽고 감명을 받았으며 그 시인 또한 어니스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존경해왔던 사이였다. 어니스트는 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인은 어니스트를 만난 자리에서 모두를 향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라고 외쳤다. 그토록 기다렸던 큰 바위 얼굴은 부자도, 장군도, 정치가도 아닌 늘 진실하고 겸손하며 온화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치고 사랑을 베푼 어니스트 자신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이 1850년대에 쓴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의 줄거리다.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인 '큰 바위 얼굴'은 한결같이 진실된 삶을 살며 모두에게 겸손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시대의 어른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큰 바위 얼굴이 있었다. 평생 구도자의 삶을 살며 군중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진 성철 스님, 갈등과 반목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따뜻한 바보' 김수환 추기경, 무소유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맑은 물줄기 같은 가르침을 준 법정 스님 등…. 이들은 평상시에는 우리 사회의 약자를 보듬는 따뜻한 가슴으로, 때론 우리 사회에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면 묵묵한 울림으로 우리를 깨우쳤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어떤 큰 바위 얼굴이 있을까. 최근 우리 사회는 참으로 힘든 일을 많이도 겪었다. 가깝게는 온 국민을 울린 세월호 사건부터, 최근에는 지자체 간 도를 넘은 신공항 유치전에 사드 배치 논란까지….

지난 15일에는 사드 배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경북 성주를 찾았던 국무총리가 6시간 동안 버스에 감금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해외순방 중인 대통령을 대신한 공권력은 분노한 대중에게 쫓겨 존엄성도 팽개친 채 낯뜨거운 탈출극을 벌였다. 또 지역 이기주의에 눈먼 성난 민심은 국가의 존엄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모두가 패자다.

우리 사회가 이렇듯 도를 넘은 이기주의로 반목의 골이 점점 깊게 파이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상처를 보듬을 위로의 말도, 우리 두 눈을 번쩍 뜨이게 할 호된 꾸짖음도 사라졌다.
우리 시대 큰 바위 얼굴이 너무 그립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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