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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불신과 불만의 최저임금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20 16:50

수정 2016.07.20 16:50

노사 모두 7.3% 인상에 반발
위원회는 정치투쟁의 장 전락.. 전문가 검토 후 정부가 결정을
[이재훈 칼럼] 불신과 불만의 최저임금

내년도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다. 7.3% 인상안(시간당 6470원)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가 수용하지 않고 있다. 양측은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인상안을 재조정하지 않으면 실력 행사에 나서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한 갈등은 반복돼온 것이지만 이번엔 정도가 심상치 않다. 최임위가 아예 결딴날 상황에 놓였다. 근로자위원 전원(9명)이 사퇴했고, 공익위원인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은 "최임위가 정치투쟁의 장으로 전락했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올해 14차례 회의를 하면서 한 번도 절충안을 제시하지 않고 66% 인상(시급 1만원)과 동결이라는 극단적 주장을 고수했다. 인상안은 근로자위원 전원과 사용자위원 중 소상공인 대표가 퇴장한 가운데 표결로 결정됐다. 30년 된 최임위에서 노사가 합의로 최저임금을 결정한 적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는 노사가 막무가내로 버티다보니 공익위원이 중재할 여지조차 없었다. 노사 합의에 의존하는 현행 최저임금 결정구조가 수명을 다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의 경우 경제 문제인 최저임금을 항상 정치적으로 또는 정책적으로 결정해온 것이 문제다. 소득격차 축소, 양극화 해소 등 여러 가지 명분을 앞세운다. 2000년부터 올해까지 최저임금은 연평균 8.6%나 올랐다. 박근혜정부 4년 동안은 도합 33% 인상됐다. 인상률이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률을 한참 웃돈다. 그렇지만 이런 지표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최저생계비 같은 것만 비교한다. 지난해에는 최경환 당시 부총리가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한 이후 8.1%나 올랐다. 올해는 최임위에 정치권의 압박이 심했다. 여야가 공히 4.13 총선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최저임금을 높이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긴 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최저임금 인상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 수준이었다. 최저임금의 절대 수준이 그리 낮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OECD 집계에 따르면 2015년 한국 최저임금은 5.3달러로 26개 회원국 중 15위지만 일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최저임금은 8위로 미국·일본보다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의 인상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정치권이 부추긴 탓이 크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누가 주는가. 대기업이 아니고 한계에 다다른 중소.영세기업과 식당.편의점 등을 하는 자영업자들이다. 최저임금 근로자의 70%가 5명 미만 사업장 소속이며, 90%가 30명 미만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은 현재의 최저임금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최저임금 근로자 비중인 최저임금 영향률은 18.2%로 OECD 최고지만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264만명이나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야당에서는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되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전업을 유도하자는 비현실적 주장을 펴고 있다.

공익위원인 윤 연구부장은 "최저임금 근로자와 별 관계가 없는 노동자단체(민주노총 등)와 사용자단체(경총 등)가 협상을 주도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제 일이 아니니 타협에 관심이 없고 일방적 주장만 내세운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노사를 배제하고 전문가로 구성된 정부 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미국.프랑스.캐나다.네덜란드 등이 채택한 방식이다. 다만 야당의 주장처럼 국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안은 절대 반대다. 포퓰리즘 정치가 최저임금제를 얼마나 망칠지 상상조차 안 간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개념과 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 최저임금 범위에 상여금, 식비 등을 포함하는 것은 국제적 관례다.
최저임금을 업종별, 지역별로 차등화하는 것도 검토해야 할 과제다. 궁극적으로 근로장려세제 같은 저소득층 소득지원책을 확대 시행할 필요가 있다.
격차 해소라는 무거운 정책과제를 영세기업.소상공인보고 짊어지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이재훈 논설위원 ljhoo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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