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공정위 선택을 존중하지만..

20년 전 첫 아이 출산을 준비하던 한 부부가 아이를 위해 튼튼하고 예쁜 침대를 하나 샀다. 혹여 아이가 떨어질까, 강아지가 아이를 해칠까 걱정돼 촘촘한 보호대도 높이 세웠다. 스무살을 넘기면서 몸집이 커진 아이는 큰 침대를 사달라고 조른다. 그러나 부모는 좀체 침대를 바꿔줄 생각을 않는다. 보호대도 튼튼하고, 여전히 예쁜데 왜 침대를 바꾸려 하느냐고 핀잔만 준다. 아이는 작은 침대에 제 몸을 맞추며 웅크리고 생활한다.

아이의 할머니는 이런 속사정은 살피지 않으면서 왜 아이가 다른 집 아이들처럼 쑥쑥 자라지 못하는지 매번 걱정만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을 불허하는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사실 이번 M&A는 단순히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문제가 아니다. 20~30년 전 만들어진 허가조건에 갇혀 사업영역을 넓히지도 못하고 몸부림을 치는 한국 이동통신 산업과 유료방송 산업의 문제였다.

정부 허가사업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특혜다. 그래서 규제도 많고 사업범위도 함부로 넓히기도 어렵다.

이동통신과 케이블TV가 딱 그렇다. 요즘 유행하는 핀테크니 모바일 동영상이니 빅데이터 음악서비스니 하는 신사업으로 몸집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20년 전 정부의 허가내용에는 그런 사업이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엔 그런 사업이 없었으니….

그런데 그 20년 사이에 산업지형이 달라졌고, 바뀐 산업지형에 맞춰 기업도 사업내용을 바꿔야 살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를 위해 효과적인 방법으로 생각해낸 것이 M&A다. 그래서 이번 M&A를 미디어 산업의 구조개편 신호탄이라고 말한 것이다.

성인이 된 아이가 스스로 돈을 벌어 침대를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딱 잘라 안된다고 했다. 지금 침대도 쓸만한데 왜 바꾸려 하느냐고….

예전에 장관 한 분이 내게 "정책은 선악이 아니라 선택"이라며 "결정된 정책은 정부의 선택이고, 정책 결정권자는 선택에 대해 국민들에게 책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던 기억이 있다. 정부의 책임을 믿고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정책을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이라는 말이었다.

공정위의 선택을 존중한다. 2016년 현재 정부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더 길게 반박하고 논쟁을 벌여봐야 국민과 산업에 실익이 없으니 존중한다.


그러나 한 가지 못을 박아둬야겠다. 정책의 책임은 정책을 선택한 당국자가 지는 것이다.

1년 뒤가 될지 5년 뒤가 될지 모르지만 이번 선택의 영향이 현실화되는 순간에 2016년 7월을 다시 떠올리는 국민들이 꽤 많이 있을 것이라고 못 박아둬야겠다.

cafe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