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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손정의가 英 회사에 미래를 건 이유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21 17:14

수정 2016.07.21 17:14

[차장칼럼] 손정의가 英 회사에 미래를 건 이유

인수합병(M&A)은 '생물'이다. 꿈틀대며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것을 잡으려면 치밀한 준비(현금)와 타이밍, 과감한 결단이 따른다.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일본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의 ARM 인수가 그렇다. 소프트뱅크 역대 최고의 빅딜(인수액 약 35조원)이다. ARM은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다.
손정의 사장이 지난달 '60세 은퇴' 계획을 돌연 철회한 것도 ARM 인수 때문이었다. M&A 협상 시작부터 합의까지 단 2주. 앞서 손 사장은 2조엔(약 21조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중국 알리바바그룹과 핀란드 게임회사인 슈퍼셀 등의 투자지분을 매각한 자금이다. 승부수는 '환율 타이밍'.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파운드화 대비 엔화 가치가 20% 이상 치솟았다. 손 사장이 '매출 1조5000억원짜리' 영국 회사(ARM)에 그의 미래를 거는 이유는 뭘까. 그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패러다임의 변화, 그 입구를 장악한다.' "그 순간에는 모두가 그 의미를 몰랐다. 바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소프트뱅크는 그 문 앞에서 큰 투자를 한다." 손 사장이 말하는 패러다임은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스마트로봇'이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관통하는 '두뇌'가 바로 ARM이다. IoT 기기에 정보처리를 담당하는 반도체 집적회로(IC)의 핵심인 중앙처리장치(CPU) 코어를 ARM이 책임진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메이커가 이를 라이선스해 쓴다. IoT 시대는 대량의 데이터를 신속하게 수집·분석하는 기술이 생존을 좌우한다. 이른바 중심 기술의 핵심부터 기기, 서비스에 이르는 IoT의 생태계(세계표준)를 장악하겠다는 전략이다.

둘째, '기존 사업의 한계를 넘는다.' 사실 소프트뱅크는 핵심 사업에서 1위가 없다. 미국 이동통신사 스프린트를 인수(2012년, 약 25조원) 미국 통신시장 1위 자리를 노렸지만 실패했다. 손 사장은 "통신사업자는 '토관화(서비스와 콘텐츠가 아닌 통신 인프라만 제공하는 체계)'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더 이상 성장성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돌파구는?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들은 '수확체증의 법칙(생산요소가 늘어날수록 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이 통한다"고 했다. 바로 플랫폼(비즈니스 기반) 장악이다. 플랫폼을 제공하는 회사가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갖는다는 것이다. ARM이 그것이다.

실패도 도전의 과정이다. 손 사장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를 만나 아이폰의 일본 내 독점판매권(2008년)을 따냈고, 감정을 가진 인간형 로봇 '페퍼'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2015년)했다. 물론 "정신이 나갔다" "무모한 투자"라는 혹평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런 손 사장을 두고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상식을 뒤엎는 (일본 경영인 중에) 가장 용감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이유인즉 브렉시트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그것도 '경직된 지배구조'의 일본 기업인이 미래를 바꿀 창의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한국인만 유독 무시하는 이웃나라 일본. '잃어버린 20년'을 딛고 일어서는 저력이 새삼 놀랍다. 한국 경제와 사회는 급성장한 기존 산업구조와 가치관의 틀을 깨지 못한 채 안으로 곪고 있다.
'손정의의 도전'이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이 어느 때보다 크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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