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갈등 프레임에 갇힌 대한민국(1)] 사실 확인도 안된 '카더라 통신'에 사회 혼란만 가중

예병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27 17:07

수정 2016.07.27 22:10

4.사회 혼란 조장하는 괴담들
사분오열, 국가 기반 흔들
루머에 흔들리는 사회 "전자파로 성주 참외 안열려"
사드 괴담 SNS서 급속 확산.. 해운대 개미떼에 "지진 전조"
대부분 과학적인 근거도 없어 손 쓸 방법도 없는 정부
"최초 유포자 엄벌" 경고에도 업무방해죄 등 적용 어려워
#최근 부산.울산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스 냄새가 난다는 소식이 소셜네트워트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졌다. 이어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찍은 개미떼 사진도 유포됐다. 이 두 가지 소식이 SNS 공간에서 빠르게 전파되면서 한 가지 괴담이 만들어진다. 원인 모를 가스 냄새와 모래사장의 개미떼가 지진 전조현상으로, 곧 부산과 울산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른바 '지진 괴담'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미 확산된 괴담은 되담을 수 없었고 전 사회적으로 지진에 대한 불안감만 커져갔다.


[갈등 프레임에 갇힌 대한민국(1)] 사실 확인도 안된 '카더라 통신'에 사회 혼란만 가중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담으로 발생하는 소모적 논쟁이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구나 SNS의 등장과 함께 괴담이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번 퍼지면 사실상 바로잡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괴담이 유포되면 정부는 유포자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SNS 공간에서 최초 유포자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찾는다 하더라도 처벌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괴담 유포가 없어지려면 공론화 등의 방법으로 사회적 자정 작용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괴담으로 불안 증폭, 정책 신뢰 하락

경북 성주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정해진 이후 SNS에서는 근거를 알 수 없는 괴담과 사실을 왜곡한 다수의 글이 빠르게 확산됐다.

가장 큰 불안을 준 것은 사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대한 괴담이었다. SNS 공간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는 △사드가 배치되면 반경 5∼6㎞ 안팎을 전자파가 뒤덮어 꿀벌이 사라지고 그 결과 참외가 열리지 않는다 △강력 전자파란 100m 안에서는 사람이 불타 죽을 수 있고, 3.5㎞까지는 민간인 출입금지 △성주에 거주하는 사람은 전자레인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 등이다.

이 같은 사드 관련 괴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나친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홍성표 외교국방연구소장은 "사드 때문에 암 환자가 급증할 것이라는 등 이런 얘기는 괴담"이라며 "사드보다 훨씬 더 전자파가 강한 게 공군에서 운영하는 레이더사이트(레이더기지)다. 그런 식이면 레이더사이트에서 근무를 잘하고 있는 공군 병사들이 다 암에 걸려 죽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처럼 SNS를 통해 유포되는 괴담은 사실에 근거했다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사회적 이슈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괴담이 등장하고 괴담으로 발생한 집회 및 시위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정치평론가인 이종훈 박사는 "괴담은 사실을 증폭시키거나 거짓말을 퍼트리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며 "괴담이 퍼지면 정부나 정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부각되고, 관련 집회와 시위가 격화되는 사회적 부작용을 부른다. 결국 정부에 대한 신뢰는 하락한다"고 지적했다.

■처벌은 사실상 어려운 현실

SNS에서 괴담이 돌면 정부의 대응 일순위는 '괴담 유포자 찾기 및 처벌'이다.

이번 사드 배치와 관련,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질문 답변을 통해 "악의적인 괴담이나 근거 없는 유언비어는 전 국민을 상대로 한 범죄"라며 "철저하게 찾아내서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정부의 대응에는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법적으로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나 광우병, 사드 배치 등에 대한 괴담 유포의 경우 형법상 업무방해죄 및 신용훼손죄에 해당한다. 또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경찰은 괴담 관련 단속과 형사처벌이 어렵다고 판단한다. 우선 업무방해죄나 신용훼손죄는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성립한다. 따라서 괴담이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하고 이 같은 증명이 선행되지 않으면 죄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

괴담 유포의 고의성을 입증하기도 어렵다.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통신을 한 자'를 처벌토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1항은 지난 2010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한 상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민주사회 국가에서 유언비어라고 해서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최근 위헌 판결이 내려져 관련 처벌이 불가능해졌다"며 "구체적인 위해가 나타나는 상황이 됐을 때 처벌을 고려할 수 있도록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경찰도 유포자를 찾기 힘들고 확실한 피해 등 위해가 발생했는지 파악하기도 상당히 어렵다"고 덧붙였다.

■근절 힘들어…자정작용 여건 마련을

전문가들은 괴담이 퍼진 후 이를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사회 이슈에 대한 괴담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건전한 토론 등 자정작용을 거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장은 "괴담과 소문은 인간사에 늘 존재했는데 이게 스마트폰으로 인해 빨리 확산되는 것"이라며 "정부가 괴담을 억지로 차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헛소문이나 괴담이 퍼질 때면 사람들이 함께 진위 여부를 따져보고 논의하는 등 일종의 자정작용을 하는 과정과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괴담 유포자 색출'과 같은 현재 정부의 대응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단순 유포자 엄벌은 괴담이 퍼지는 속도를 순간적으로 멈추게 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괴담을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형준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는 "괴담과 같은 황당한 소문이 왜 퍼지는지를 분석할 때 가장 비효과적인 방법이 유포자를 탓해서 해결하려는 것"이라며 "논리적으로 모순된 부분을 찾아내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괴담이 퍼지면 어떤 부분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접근해 사람들이 괴담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구자윤 박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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