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영국을 위한 싸움 포기할건가

케빈 오루크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사 교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잔류파들은 이제 영국의 미래를 위해 싸우기를 포기한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잔류파 상당수는 반 유럽연합(EU) '탈퇴파'의 근본적인 주장도 수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 유럽인들이 너무 많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는 논란을 악화시키고 무모한 희망을 낳고 있다. 부질없는 희망들은 이렇다. 어쩌면 영국은 EU 시민들에 대한 이민제한에 나서면서도 단일시장 접근을 박탈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국을 달래기 위해 EU 스스로 자유로운 노동력 이동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EU가 영국 대학부문을 지키기 위해 특별한 예외를 두거나, 아니면 꼬마나라인 리히텐슈타인처럼 영국도 단일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지도 모른다.

사실 영국이 계속해서 유럽인들을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을 잔류파가 수용하면서 영국은-최소한 잉글랜드와 웨일스는-브렉시트 경착륙을 향해가고 있다. 연합만이 아닌 유럽 단일시장으로부터도 탈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국은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영국은 이민 유입 면에서 상위 그룹에 속하지만 다른 국가보다 특출나게 많지는 않다. 특히 인구 대비 이민 유입규모로는 더 그렇다. 사실 인구 대비 이민자 비중은 아일랜드가 2배나 높다.

양국 간 유사성을 감안하면 영국 정책담당자들은 브렉시트 이후 상황을 꾸려나갈 때 아일랜드 모델을 검토해야만 한다.

아일랜드인과 영국인은 다르지만 다른 유럽인들에 비해서는 문화적으로 더 가깝다. 2008년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로 리스본조약을 거부한 데서 보듯 더블린의 저소득층은 잠재적인 반 이민 투표성향을 갖고 있다. 세계화로 이득을 본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들 저소득층은 영국이나 아일랜드나 같은 성향의 유권자들로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자신을 드러냈다.

문제는 왜 아일랜드에서는 EU 이민에 대해 영국만큼의 적개심으로 발전하지 않았는가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당시 EU 기구들이 아일랜드를 지독히 대했던 점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상당한 책임은 영국 언론에 있다. 아일랜드에는 영국과 달리 작위적이고 호전적인 시궁창 같은 언론이 흥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 큰 비난의 대상은 영국 정치지도자들이다. 한편으로는 종종 완전한 허구에 기초한 EU 공격을 통해 경력을 쌓은 이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처럼 미적지근한 잔류파로 EU 회원국 지위 유지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 이제 심지 굳은 잔류파조차 영국과 EU 간 지속적인 양방향 노동 이동과 유럽경제지역(EEA) 회원국 유지를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이 같은 문제를 겪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일랜드 국수주의 정당이자 이전에는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정치기구였던 신페인은 영국독립당(UKIP)이 동원했던 외국인 혐오 수사들에 빠지지 않았다. 사실 신페인은 EU 등지의 이민 문제와 관련해 국수주의를 버리고 실용적인 노선을 택하고 있다.

문화적 국수주의 같은 문제들도 있다. 솔직히 동료 유럽인들이 영국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영국인들의 적개심은 영국 사회의 가장 질 낮은 면모와 관련이 있다. 이민, 세계화에 대한 경제적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공공서비스 확충과 함께 그와 같은 정도로 이전 잔류파가 영국인들에게 왜 자유로운 재화, 서비스, 사람의 이동이 영국에 좋은지를 계속해서 설명해야만 한다.

브렉시트는 두 가지 맛이 있다. EEA 회원국으로 유럽 단일시장에 접근하면서 자유로운 이민을 허용하거나 단일시장을 탈퇴해 예측불가능한 교역협상에 나서거나 하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영국 유권자들이 어떤 맛을 택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영국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항인 두번째 옵션, 즉 브렉시트 경착륙을 향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잔류파가 EEA 가입을 주장하지 않는 것은 경악할 정도의 책임 방기이다.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