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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청렴한 사회를 위하여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01 16:58

수정 2016.08.01 16:58

[fn논단] 청렴한 사회를 위하여

전광용의 '꺼삐딴 리'는 오랫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식민지 시대와 해방 그리고 전쟁 등 한국사의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헤쳐나간 왜곡된 한 인물의 삶이 그려진 이 작품은 우리의 삶을 되비추어 주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꺼삐딴 리'라 불리는 이인국 박사는 오직 자신의 출세와 부만을 위해 살아온 인물로 일제강점기에는 친일파로, 해방 후 북한에서는 친소파로, 그리고 1·4후퇴 이후로는 다시 친미파로 재빨리 변신할 줄 아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이다.

잠꼬대까지 일어로 해야 받는다는 '국어상용의 家'라는 상장을 액자에 넣고 '무슨 경사나 난 것처럼 기뻐했던' 그는 의사로서 아프고 병든 자를 위한 의료인의 길보다는 환자의 경제능력부터 감정하는 부와 출세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상대가 지기나 거물급이 아닌 한 외상'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었으며 그의 고객도 '왜정시대는 주로 일본인이었고 현재는 권력층이 아니면 재벌의 셈속에 드는 측들'이 대부분이었다.

해방 후에는 이북에서 친일파, 반일투사 치료 거부 등의 이유로 감옥에 갇혀 무기 또는 사형이라는 현실에 잠깐 절망하였던 그는 소련인 스텐코프 소좌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로 기적적으로 되살아나 소련인의 후원 속에 당간부들과 적극적인 유착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6·25가 터지자 또다시 낯선 남한에서 이번에는 강대국 미국을 통한 출세를 위해 문화재인 고려청자를 대사관의 브라운에게 뇌물로 바치며 미국행을 모색하게 된다.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당대에 만연했던 부와 출세를 향한 특정 엘리트들의 무분별한 작태를 풍자적으로 비판하고자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특정 엘리트들이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전방위적으로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피아, 모피아, 철피아, 법피아, 정피아, 군피아 등등 수많은 '×피아'들은 대한민국을 불법과 탈법으로 이권을 갉아먹는 '마피아공화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땅콩 회항'을 비롯한 사회전반에 걸친 제도적 비제도적인 부당한 갑을관계(세칭 갑질논란)나 최근의 '정운호 사건'이나 '넥슨 사건'과 같은 검찰과 기업의 부적절한 관계, 그리고 검찰 내부의 부패한 인맥관계나 황당한 전관예우 등을 보면 우리 사회가 '꺼삐딴 리'가 살았던 1950년대로부터 그리 멀리 온 것 같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며칠 전 '헌재'에 의해 합헌 결정된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은 김육의 '대동법' 이래 최고의 혁신이라 말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로 미비점들을 보완해야 하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오랜 세월 누적된 엘리트간의 인맥과 연줄을 통한 부당이득 카르텔을 해체하는 전초전으로서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엘리트들간의 이러한 부정과 불법의 커넥션을 '엘리트 카르텔 부패 유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김 전 대법관은 "문화를 바꿔서 부패를 방지하자는 것이지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엘리트 카르텔'의 부패문화가 청렴문화로 바뀔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진기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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