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편법 부르는 김영란법

"김영란법이 한국의 뿌리 깊은 접대문화를 100% 막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편법만 양산하지 않을까 우려되네요." 공무원과 언론인 등의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지난달 28일 합헌 결정이 난 뒤 한 기업의 대관업무 담당 직원은 이 같은 우려를 표했다. 비슷한 예로 지난 2004년 도입됐다가 부작용만 키운다는 여론 속에 5년 만에 폐지된 접대비 실명제의 전철을 김영란법이 밟을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접대비 실명제는 기업이 건당 5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지출할 경우 접대 목적과 접대자 이름, 접대 상대방의 상호와 사업자 등록번호 등을 기재하도록 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당시 접대비 실명제를 피하기 위해 '영수증 쪼개기'와 함께 '카드 나누기'라는 편법이 생겨났을 정도다. 김영란법에서도 식사비 한도인 3만원을 넘는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비슷한 편법을 쓰지 말라는 법이 없다. 3만원 이상 식대가 지불됐을 때는 접대 대상의 인원수를 부풀리는 편법이 가장 쉽게 동원될 수도 있다. 접대 대상자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고급 레스토랑에 모두 배치될 수도 없는 일이다.

심지어 골프장에선 필드에 들어가기 전에 골프장 밖에서 부킹비용을 접대자에게 사전 제공하고 각자 계산하는 기형적 편법까지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장기적으로는 상품권 지하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도 있다. 상품권 시장은 김영란법 시행 초기에는 심리적 압박으로 다소 위축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오히려 팽창할 수 있다는 것이다. 5만원 이상의 고가 선물세트는 접대자의 주소지로 택배 배달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근거가 남는다. 하지만 상품권은 수표와 달리 추적이 쉽지 않고 현금처럼 쓸 수 있기 때문에 접대용 선물로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풍선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상품권을 책 등에 끼워서 넣어 은밀하게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현금처럼 통용되는 상품권에도 고유의 번호가 있지만 2차례나 3차례의 유통 단계를 거치면 받는 사람을 추적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같은 편법 운영이 우려되는 것은 한국의 뿌리 깊은 접대문화가 원인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더민주당 이찬열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에는 기업 59만여곳의 접대비 지출이 9조9685억원으로 10조원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유흥업소에서 쓴 금액이 1조1418억원으로 8년 연속 1조원을 넘겼다.

업종별로는 제조업계의 접대비 지출이 3조원을 넘어 가장 많고 도매업과 서비스업, 건설업이 1조원 이상 지출하며 그 뒤를 이었다.
한국의 뿌리 깊은 손님 접대문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전 세계에서 찾기 힘든 한국식 손님 접대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김영란법이 완벽한 처방전이 되기 어렵다. 김영란법이 자칫 편법을 양산하는 기형적 법안이 되지 않도록 국민적인 자정 노력과 함께 합리적인 법 적용이 요구된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생활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