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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규제개혁, 부패 막는 특효약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03 17:11

수정 2016.08.03 17:11

[fn논단] 규제개혁, 부패 막는 특효약


헌법재판소의 지난달 말 합헌결정으로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법적인 정당성을 확보하였고 9월 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언론.사학 등 민간부문까지 포함해 그 대상자만 4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므로 한국 사회는 당분간 상당한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를 포함한 상당수의 무리한 입법이라는 견해와는 달리 헌법재판소가 이 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린 것은 현재 우리 사회의 부패 수준이 심각하다는 대중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현직 검사장의 뇌물수수 혐의 구속 등 일련의 사건도 이 같은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짐작된다.

기실 한국 사회의 부패 정도는 그동안 계속된 반부패 노력에도 불구하고 크게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하는 세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를 보면 2015년 기준 한국의 부패점수는 5.6점(높을수록 청렴)이며 최근 3년간 5점대 초중반에 머물러 큰 변화가 없는 상태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부패 개선이 어려운 원인으로 학연·지연 등이 중요시되는 연고주의, 부패친화적 온정주의 등 사회문화적 요인을 들 수도 있겠지만 '규제'라는 제도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규제와 부패 간의 관계는 이미 학문적으로도 충분히 확인된 관계다. 즉 규제의 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국가에 비해 부패의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모든 규제가 부패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활동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각종 인허가를 거쳐야 하고, 정부의 재량적 판단에 의해 비즈니스의 성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을수록 부패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은밀한 뒷거래로 얻어지는 이익의 크기가 클수록 부패의 유혹은 강렬하기 마련이다. 어떠한 제재장치가 있다 하더라도 규제가 많은 국가에서는 청렴도가 높아지기 어렵다. 한국의 부패 수준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실제 OECD에서 발표하는 상품시장규제(PMR.Product Market Regulation) 수준을 보면 한국은 2013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다. 이는 5년마다 발표되는 이 지표의 2008년 조사(회원국 중 여섯 번째로 높은 수준)에 비해 오히려 악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즉 부패 수준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규제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것과 무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난 수십년간 한국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부패의 사회문화적 요인은 퇴색된 반면 제도적 요인인 규제 수준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규율의 대상으로 삼으면서까지 도입된 '김영란법'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규제개혁이 필수적이다.
부패의 인센티브가 제거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김영란법'을 우회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낼 거라는 것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아니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법을 지키지 않거나 무시하여 사실상 '죽은 법'이 되는 반면 미운 사람을 옭아맬 합법적 수단으로만 작동하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규제개혁은 경제도 살리고 부패도 줄이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적 정책수단인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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