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오도가도 못하는 인터넷은행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03 17:11

수정 2016.08.03 17:11

은산분리 규제에 발 꽁꽁.. 재벌 싫다고 혁신 거부해서야
우상호 원내대표가 길 터달라
[곽인찬 칼럼] 오도가도 못하는 인터넷은행


김영란법 시행(9월 28일) 전에 청탁 하나 해야겠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한테 넣는 청이다. 내 눈에 우 원내대표는 합리주의자다. 여소야대 정국이 그나마 덜 시끄러운 것은 우상호 덕분이다. 사실 그가 김영란법 시행령을 손보자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밥값 상한선 3만원을 5만원으로, 선물 5만원을 10만원으로 올리자는 이야기를 제1야당 원내대표가 할 줄은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관련 기사 댓글을 보니 비난투성이다. 그래서 그의 소신이 더 돋보인다.

다름이 아니라 인터넷전문은행에 관한 청이다. 지금 우리나라엔 인터넷은행이 두 곳 있다. K뱅크와 카카오뱅크. 작년 11월 금융위원회에서 예비인가를 받았다. 이르면 연내 본인가를 거쳐 정식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K뱅크는 KT, 카카오뱅크는 카카오가 주도한다. 적어도 겉으론 그렇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은행법 개정안이 19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되는 바람에 인터넷은행의 주도권이 금융사로 넘어갔다. 카카오뱅크는 최대주주인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지분 구조상 카카오(10%)가 한국투자금융지주(54%)를 당할 수 없다. KT(8%) 지분도 우리은행(10%)에 못 미친다. 자본주의에선 지분이 왕이다. 최대주주가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인터넷은행은 기존 금융질서를 깨뜨리는 데서 출발한다. 혁신적 정보기술(IT) 기업이 주도하는 게 맞다. 보수적 은행이 주인 노릇 하는 인터넷은행은 역설이며 모순이다.

그럼 왜 애당초 KT와 카카오는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지 않았을까. 은행법, 더 구체적으론 은산분리 규정이 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현재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10% 이상 가질 수 없다. 10% 중에서도 의결권 지분은 4%밖에 안 된다. 이른바 4% 룰이다. KT의 K뱅크 지분 8% 가운데 4%, 카카오 지분 10% 가운데 6%는 허당이란 얘기다. 대신 KT와 카카오는 은행법이 바뀌면 증자를 통해 의결권 지분을 대폭 높이려 했다.

헛기대였다. 은행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개정안은 인터넷은행에 한해 예외적으로 산업자본의 지분 소유 한도를 50%까지 높이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산업자본 중에서도 재벌 대기업은 뺐다. 은행의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야당은 반대의 뜻을 꺾지 않았다. 반 재벌 성향의 야당 의원들은 은산분리 완화란 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오히려 인터넷은행은 서민정당인 더민주가 앞장서서 키워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인터넷은행의 책무 중 하나는 중금리 시장 활성화가 될 것이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중신용자 수백만명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린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20%를 웃도는 고금리다. 10~20%대 중금리 시장은 공중에 붕 떠 있다. 이 시장을 인터넷은행이 메울 수 있다. 무점포 영업으로 아낀 비용만큼 금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이 외면하는 중소기업, 벤처 대출에서도 K뱅크.카카오뱅크가 나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인터넷은행을 기존 은행이 주도하도록 방치하는 건 반칙이다. 이쪽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주주로 참여한 은행들은 인터넷은행 자체보다 핀테크에 관심이 크다"고 말한다. 사실 은행들로선 인터넷은행이 성장할수록 제 발등을 찍는 꼴이다. 기를 쓰고 키울 이유가 없다. 금융위는 어떨까. 시중은행과 인터넷은행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어디를 선택할까. 묻는 내가 바보다.

자, 다시 청탁 모드로 돌아가자. 우 원내대표도 알다시피 한국 금융의 경쟁력은 조롱거리다. IT강국의 실력을 인터넷은행에서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터달라. 20대 국회 들어 새누리당 강석진.김용태 의원이 은행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내용은 19대 때와 대동소이하다. 확신이 안 서면 개정안에 서민금융 의무화 조항을 삽입해도 좋을 것이다.
제1야당 원내사령탑의 힘은 막강하다. 우 원내대표님, 한국 금융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좀 안 되겠습니까.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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