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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중증질환자와 '운전의 자격'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05 17:44

수정 2016.08.05 17:44

[여의도에서] 중증질환자와 '운전의 자격'


얼마 전 급하게 취재현장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무심코 택시기사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70세는 넘어 보이는 백발의 택시기사의 양손과 머리가 떨리는 수준을 넘어 아예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부산에서 발생한 뇌전증 환자의 교통사고가 생각나 중도에 그 택시에서 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택시기사는 최소한 파킨슨병 초기 증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파킨슨병의 초기 증상은 손이나 팔의 떨림 등이 나타나고, 근육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당연히 안전운전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부산에서의 뇌전증 환자 교통사고는 직접적인 원인을 놓고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중증질환자가 운전대를 잡는 것에 대한 경각심은 물론이고 운전면허 관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직업상 대중을 상대로 하루종일 운전을 하는 택시기사라면 더더욱 운전면허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 택시를 이용하다보면 고령의 택시기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젊은 기사들에 비해 신체 기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최근에는 은퇴한 후 새로운 일거리를 찾는 노년층이 정년퇴직이 없는 택시기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60대 이상 서울의 택시기사는 올해 1월 기준 8만7368명(45.2%)으로 절반에 가깝다. 개인택시는 54%로 60세 이상이 절반을 넘는다. 70세 이상도 7.8%에 달한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령자는 질환 여부를 더 철저히 검사한 후 운전대를 잡도록 해야 한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감안해 버스기사에 대해 자격심사를 받도록 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부터 65세 이상의 버스 운전기사가 3년마다 자격 유지심사를 받도록 운수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택시 운전기사는 해당되지 않는다.

외국은 70세 이상 고령자에게는 운전면허증 갱신주기를 단축하고 안전운전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갱신주기는 2∼3년으로 우리나라의 갱신주기(5년)보다 짧다. 택시나 버스 등 대중교통 운전자는 물론이고 일반 운전자에게도 적용된다. 일본은 고령 운전자가 스스로 75세 이전에 개인택시를 팔고 그만두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더불어 고령 운전자의 차량은 스티커 등으로 다른 운전자들이 식별할 수 있도록 한다.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할 경우 교통비를 일부 지원하는 인센티브도 제공하고 있다.

고령자는 물론이고 젊은 사람도 운전에 지장을 받을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이 있다면 당연히 운전면허를 제한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시스템에서는 질환자에게도 운전면허가 정상적으로 발급되고 있다. 부산 뇌전증 환자는 지난해 뇌전증 진단을 받고도 올해 7월 면허 갱신을 위한 적성검사를 별문제 없이 통과했다고 한다.


현행 운전면허 제도에서는 면허시험 응시자나 적성검사 대상자가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병력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본인과 가족, 나아가 사회안전을 위해 운전에 결격사유가 있다면 스스로 운전대를 잡지 말아야 한다.
정부도 일본 등과 같이 이런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정책에 신경을 써야 한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생활경제부 차장·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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