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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의 소비자경제] 전기요금 차등의 부작용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11 17:05

수정 2016.08.11 22:40

[이성구의 소비자경제] 전기요금 차등의 부작용

최근 더운 날씨로 인해 전기요금 누진제가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전기요금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서비스의 가격인 만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한국전력 배전망에 의해 독점 공급되는 전기요금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해 전기사업법에 따라 인가하게 된다. 그동안 정부는 이러한 전기요금 인가권을 이용해 산업별로 전기요금을 차별하기도 하고, 가정용 전기의 경우 저소득가구 지원을 명목으로 누진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기요금을 활용한 산업정책이나 복지정책은 근본적인 함정을 갖고 있다.

우선 정부가 산업에 따라 전기 사용을 장려하거나 억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산업별로 전기요금을 차등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 예컨대 가장 싼 요금을 적용받는 산업은 농업인데, 농업을 다른 산업에 비해 전기 사용 집약적으로 발전시켜 전기 소비를 촉진시킬 이유는 찾기 어렵다.
비단 농업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전기요금을 차등해 지원하는 것은 생산활동을 왜곡하게 된다. 왜냐하면 전기에 대한 수요도 가격이 싸지면 증가하는 것인데 어떤 산업의 전기요금을 싸게 해줘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떤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전기요금으로 지원하기보다는 세제나 기술개발 등 일반적 지원이 바람직하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전기 사용량이 가구소득에 비례한다고 보고, 1974년 석유파동 당시 가정용에 도입된 후 1979년 2차 석유파동으로 더욱 강화되었고, 이후 약간 변동은 있지만 계속 유지돼 현재 kwh당 전기요금은 최저 60.7원에서 최대 709.5원으로 11.7배에 이르고 있다. 당시 텔레비전, 냉장고 등 전자제품을 갖고 있으면 부유층이라는 가정 아래 전기를 많이 쓸수록 비싼 전기료를 내도록 해 가정용 전기 소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저소득층 가구라도 에어컨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전기제품을 보유하게 돼 전기요금 누진제로 인한 요금폭탄은 오히려 부유층보다 저소득가구의 전기사용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산업부가 '벽걸이 에어컨 하루 3시간 정도로는 요금폭탄을 맞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것은 전기 공급 주무부처의 소비자들을 향한 오만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대응이 에너지 수급정책 실패로 인한 블랙아웃 우려를 가정용 전기 소비자들의 고통으로 해결하고, 독점기업인 한국전력의 수지에도 나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물론 산업부 에너지정책 담당자들도 전기요금에 산업정책이나 복지문제까지 끼어든 것은 자신들도 떠밀린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소비자가 에어컨을 켜는 선택에까지 한 수 가르치려는 생각은 부적절하다.
나아가 이미 전기요금 누진제로 인한 부당이득반환 소송이 진행 중이기도 하지만, 비록 경쟁제한의 의도가 아니고 인가요금제 탓이라 하더라도 독과점기업이 부당하게 소비자를 차별하는 행위는 공정거래법에 위반될 수도 있다.

yisg@fnnews.com 이성구 fn소비자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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