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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공화당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12 17:25

수정 2016.08.12 17:25

[월드리포트]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기려면 기적이 필요하다."

한때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에 앞서며 연일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추락하고 있다. 도를 넘은 막말에 거센 역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당내 경선 때부터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입국 전면금지, 멕시코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한 장벽 설치 등 인종차별적 발언과 여성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트럼프는 최근 무슬림계 미군 전사자 부모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그간 자극적인 발언으로 재미를 본 트럼프가 미국 사회의 근본가치인 애국주의를 비하하고 조롱하자 공화당 안팎에서 분노가 폭발했다. 최근에는 힐러리가 총기 소지를 허용하는 수정헌법 2조를 폐기시키려 한다며 "수정헌법 지지자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힐러리의 당선을 막기 위해 표를 결집해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지만 '암살교사'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삐 풀린 트럼프의 막말에 지지율은 하락하고 트럼프 대신 힐러리를 지지한다며 당을 이탈하는 공화당 인사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뜻하는 '클린턴 리퍼블리컨(Clinton Republican)'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트럼프가 내놓은 경제공약도 반응이 좋지 않다.

경제 전문가들과 월가에서는 트럼프의 공약이 좌파와 우파의 낡은 아이디어를 끌어모아 함께 꿰맨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같다고 비판한다. 보육세 소득공제 등 좌파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책과 규제완화 및 법인세 인하 등 우파의 비위를 맞추는 정책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정치 분석가들은 이제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정확히 예측했던 정치과학자 드루 린저는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25%로 예상했다. '미국 대선 족집게'로 알려진 네이트 실버 역시 여론조사와 경제.역사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거결과를 예측하는 '폴스플러스(polls plus)' 모델을 통해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25%로 봤다. 중립적 성향의 미국 정치분석가인 스튜어트 로젠버그는 더 나아가 "트럼프의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하다"고까지 말한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패색이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패배하고 공화당은 정치적 황무지에 남겨질 것이란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미국 의회전문지 더힐은 다수의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들이 트럼프가 대선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할 것임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일부 공화당 전략가들은 트럼프의 대선 패배를 가정하고 공화당의 상·하원 연방의원 선거로 지지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광고를 논의 중이다. 새로 출범할 힐러리 행정부에 대항해 마지막 방어선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공화당 인사들은 트럼프의 패배가 공화당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번 대선으로 분열된 당이 다시 화합하고 재건할 시간을 갖게 되고 결국 2020년 정권을 되찾기 위해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공화당이 2020년까지 민주당의 힐러리처럼 확실한 후보를 내놓을 수 없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향후 4년도 이번 대선처럼 대선후보들을 골라내는 데 혼란과 분열이 반복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기영합적 아웃사이더 그룹과 공화당 주류층과의 대결이 11월 대선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공화당 내 자리잡고 있다.
공화당 내 강경 보수파들로 트럼프를 지지했던 '프리덤 코커스', 트럼프 때리기에 앞장섰던 공화당 후원단체 '성장클럽(club for growth)', 보수성향의 정치조직인 '헤리티지액션' 등의 분파가 남으면서 당내 통합이 쉽진 않을 전망이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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