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다단계 판매원으로 몰리는 사회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14 17:10

수정 2016.08.14 17:10

[데스크 칼럼] 다단계 판매원으로 몰리는 사회

매출 5조원에 시장규모 세계 3위, 매출 성장률 14.5%, 판매원 수 796만명, 판매원 일인당 연평균 후원수당 100만원…. 우리나라 직접판매산업, 이른바 다단계산업의 현 주소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으로 깊이 빠져드는 가운데 다단계산업은 '나 홀로 고속성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다단계시장(매출)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5조원을 넘어서며 한국은 세계 3위의 '다단계 대국'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지난해 다단계산업 전체 매출 증가율은 14.5%로 두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다. 다단계시장이 고속성장하면서 다단계업체와 다단계 판매 종사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다단계업체는 128개로 1년 동안 17% 늘었다.
다단계 판매원도 796만명으로 1년 전보다 15.5% 증가했다. 경제활동인구가 2700만명임을 감안하면 3명 중 1명이 다단계판매에 직간접적으로 종사하는 셈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부업으로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단 한 개의 일자리가 아쉬운 취업대란 시대에 전체 국민(약 5100만명)의 15%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니 이만한 효자산업이 어디 있겠나.

이렇듯 적어도 외형으로는 기업, 매출, 종사자 등 주요 지표에서 모두 두자릿수 성장을 구가하며 한국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을 맡고 있다. 대내외적 여건으로 가뜩이나 수출과 내수가 동반침체하며 저성장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드는 한국 경제 현실에서 다단계산업의 고속성장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다. 더구나 한 다단계업체 관계자의 말처럼 내수 활성화에다 일자리 창출 등으로 경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 외에도 방문 대면판매하는 과정에서 독거노인들의 말벗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지킴이 역할에다 방범 등 사회감시자 역할에 이르기까지 정기능도 많다.

그럼에도 다단계산업이 이같이 고속성장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먼저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 비춰 다단계시장 규모는 기형적이라는 점이다. 경제규모가 세계 11위인데 다단계시장 순위로는 3위에 올라 있다. 다단계 판매는 한국적 정서인 '정'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활동인구의 30%가 다단계 판매원으로 종사할 정도로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고는 하지만 일자리의 질을 따져보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다단계 판매원이 1년간 받은 후원수당은 일인당 평균 100만원이다. 그런데 매출실적을 많이 거둔 상위 1%에 후원수당이 집중됐다. 다단계 판매원 5명 중 4명은 아예 후원수당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매출실적 상위 1%도 채 안 되는 판매원들은 일인당 평균 5104만원의 후원수당을 받았다. 결국 796만명에 달하는 다단계 판매원의 99%가 사실상 잠재적 실업자나 진배없다. 더구나 다단계 판매원은 직업분류상 근로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다. 그래서 4대 고용보험도 내지 않을뿐더러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없다. 그만큼 불안한 일자리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다단계로 몰리는 것은 그보다 나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노동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은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 축 처진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에서다.
고비용·저효율 노동시장을 구조적으로 개혁하지 않고는 저성장·저고용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그 첫걸음이 노동개혁 4법의 조속한 입법이다.
그런데도 노동계와 야당은 비정규직 양산과 고용안정 저해라는 원론적 이유를 들어 반대로 일관하고 있다. 온 국민을 다단계 판매원으로 만들 셈인가.

poongnue@fnnews.com 정훈식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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