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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기싸움으로 바뀐 '이화여대 사태'

김병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22 16:55

수정 2016.08.22 16:55

[차장칼럼] 기싸움으로 바뀐 '이화여대 사태'

이화여대 본관 점거 사태가 길어지면서 2학기 개강 이후에도 계속되는 상황이 벌어질지 우려감이 높다. 지난달 28일 미래라이프대학 반대를 외치며 시작된 학생들의 농성이 이렇게 장기화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반대한 이화여대 학생들과 졸업생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일부에서는 학벌주의.순혈주의라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이화여대'라는 브랜드를 얻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누구도 반칙을 써가며 이화여대의 정문을 통과하지 않았다.

투쟁 명분도 있었다.
미래라이프대학은 이화여대가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에 선정되면서 추진됐다. 그러나 이화여대에는 이미 평생교육원이 설치돼 있고, 미래라이프대학의 뉴미디어.웰니스산업 전공과 유사한 전공도 기존 학부에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 이 과정에서 학내 소통이 부족했다는 부분도 공감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학생들은 사상 첫 정부재정지원사업 반납이라는 모두를 놀라게 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본관 농성 과정에서 경찰투입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사태가 완전히 꼬였다. 학교 측은 미래라이프대학 철회 배경에 경찰투입 부분이 포함됐다는 입장이지만 학생들은 그것과는 별개 문제라며 총장퇴진을 들고나온 것. 결국 현재 상황은 사퇴 이외에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총장과 퇴진이 먼저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충돌하며 명분싸움에서 기싸움으로 바뀐 형국이다.

명분싸움은 어느 한쪽에 힘이 실릴 수 있지만 기싸움은 승부를 가리기 힘들다. 결국 지금의 대치국면은 양자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특히 한쪽은 '완벽한 승리'를 원하고 있다.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고 협의를 이끌어낼 중재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중재자로 거론됐던 이사회나 교수협의회, 동창회의 모습은 안타깝다. 이사장은 이번 사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고 총동창회도 소극적인 태도다. 교수협의회는 아예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쪽으로 포지션을 잡았다. 만약 그것이 히든카드였다면 전략을 잘못 세운 듯하다. 양측의 대결구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00명이 넘는 교수들이 실명으로 사퇴요구에 서명했지만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등 실리와 명분 모두 잡지 못한 형국이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여론의 관심도 줄어들고 있다. '아직도 계속되느냐'고 반문할 정도다.
학생들에게는 '지나친 요구'라는 지적이, 총장에게는 또다시 문제해결 능력과 소통에 대한 의구심만 늘었다.

이화여대 가족이라고 자칭했던 사람들이라면 이번 사태를 총장과 학생의 대립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는 심정으로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이화여대 사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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