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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테러 후의 니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25 16:57

수정 2016.08.25 22:31

[여의나루] 테러 후의 니스

천재지변이 아닌 테러로 여행자제국가가 되어버린 관광대국 프랑스. 그 프랑스를 니스 테러가 일어난 지 한 달도 안돼 방문한다는 것은 선뜻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테러 위험 때문에 모처럼 마음 먹은 여정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긴장감이 여행의 묘미를 더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한편으로는 궁금증과 불안감을 안고 길을 나섰다.

지중해의 여름은 테러와는 아무 상관없이 빛났다. 하늘은 티끌 하나 없는 그야말로 창공(蒼空)이었고, 바다는 수채화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파랬다. 테러가 일어난 니스 해변 산책로를 걷다 보니 작열하는 태양에 피부는 금세 빨갛게 익어버렸다. 여기저기서 모여 먹고마시면서 웃고 담소를 나누는 프랑스인들의 표정들은 참 밝고 활기차다.
역시 일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 산다는 느낌을 물씬 풍긴다. 그들의 식도락에서는 '지금 여기'의 행복을 중시하는 '여유와 느림'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프랑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여행가방 끄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역사(驛舍)에서 분위기와는 약간 생뚱맞게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역시 문화대국답구나 생각하면서 피아노 치는 사람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총을 든 군인들이 나타나더니 흘깃 나를 훑어보았다. 순간 움찔했다. 그 뒤에도 총 든 군인들은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스포츠댄스장에도 불쑥 나타났고, 기타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는 성당 앞 광장 모퉁이에도 서 있었다. 묘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군인들의 모습이 친숙해졌다. 가만히 보니 유럽인은 물론 아프리카인, 중동인, 아시아인 등 인종이 다양하다. 베레모 색깔도 빨강, 파랑, 검정 3색이다. 여기서도 프랑스의 다양성이 보이는구나.

최근 프랑스는 이전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중서부지역의 마그레브 출신 무슬림 이민 2세들의 유럽사회 부적응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특히 이민 2세들 중 소외계층이 차별과 좌절을 느끼면서, 프랑스 사회를 분열과 불안으로 몰고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니스 테러도 이슬람국가(IS) 조직의 직접적 공격이라기보다는 이런 소외계층의 공격적 반발 모습의 하나로 파악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테러가 일어났던 니스 해변에 보름달이 떴다. 은은한 달빛이 물결을 적시는 해변 자갈밭에 드러누워 밤하늘의 별을 본다. 파도가 자갈을 때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평온하게 들린다. 개가 갈매기를 쫓는 이 평화로운 해변에서 어떻게 84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가 발생할 수 있었을까. 해변 산책로에 놓여 있는 인형과 타다 남은 초 ,그리고 시든 꽃만이 이곳이 테러 현장임을 말해 줄 뿐이다.

프랑스의 비상사태는 자국민보다 외국 관광객이 더 잘 느낄 것 같다. TGV 열차가 고속으로 달리던 중 갑자기 정차하더니 경찰견을 앞세운 경찰이 열차 내를 수색한다고 무려 한 시간 넘게 머물렀다. 미술관에서는 소액 입장료로 현금 대신 카드결제를, 오디오 대여에 여권 보관까지 요구했다. 심지어 시골역 역무원은 좌석 예약에 생년월일까지 물어보았다.

이런 사태에 처음 접해서는, 동양인이라고 일단 의심과 관찰대상에 올려 정보제공 요구와 신분확인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프랑스의 공기가 묵직하고 답답하게 느껴져 기분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 대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좋은 방향으로 이해를 달리하게 되었다. 프랑스 직원들은 세퀴리테(securite·안전)에 관한 직무규율을 지켰던 것이고, 작금의 프랑스 사태를 보면 자국민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을 위해서도 이런 안전조치가 필요하겠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발걸음이 가벼워지면서, 프랑스가 익숙해지려는데 금방 '오흐브와', 작별인사를 할 때가 되었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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