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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전기차냐, 수소차냐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31 17:31

수정 2016.08.31 17:31

세계 시장은 전기차 중심 재편
정부는 수소차 지원 강화 나서.. 선택과 집중으로 대세 따라야
[이재훈 칼럼] 전기차냐, 수소차냐

2000년대 중반 이후 자동차 업계에서는 친환경차의 미래가 전기차냐, 수소연료전지차(수소차)냐를 놓고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최근 시장의 판세를 보면 이런 논쟁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글로벌 자동차시장은 전기차를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수소차는 전기차에 비해 공해가 없고 주행거리 면에서 우세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글로벌 자동차업체와 소비자의 시선은 온통 전기차에 쏠리고 있다.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잊을 만하면 '일'을 낸다.
최근 머스크는 1회 충전에 역대 전기차 최장거리인 506㎞(315마일)를 달리고 2.5초 만에 시속 95㎞(60마일)에 도달하는 신차를 선보였다. 이 정도면 내연기관 차의 성능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올 3월 1회 충전으로 346㎞를 가는 '모델3'를 4000만원에 예약판매해 인기를 모은 지 불과 5개월 만이다. 모델3에 경악한 나머지 2018년에 주행거리 320㎞의 전기차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현대자동차는 성큼성큼 달아나는 테슬라에 머쓱할 수밖에 없다.

미국, 중국, 독일 등 주요국 자동차업체들은 전기차 기술 개발에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애플 등 정보기술(IT) 업체들까지 가세하면서 자율주행과 결합된 전기차 개발이 붐이다. '테슬라 쇼크'의 영향이 크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만큼은 세계 최강이 되겠다며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쳐 세계 1위 업체 BYD를 탄생시켰다. 짧은 주행거리, 긴 충전시간, 부족한 충전인프라 등 전기차의 고질적인 약점이 빠른 속도로 극복되고 있다.

수소로 전기에너지를 만들어 구동하는 수소차는 전기차보다 훨씬 비싼 가격과 전무하다시피 한 충전인프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수소차는 토종업체인 현대차가 강하다고 자부하는 분야다. 현대차는 2013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수소차인 투산 ix FCEV를 출시했다. 하지만 가격이 1억5000만원을 넘어 거의 팔리지 못했다. 수소차에 탑재하는 연료전지에 50~70g의 값비싼 백금이 들어간다. 수소 충전소 하나 만드는 데는 30억원 넘게 든다. 현재 국내에서 운행 중인 수소차는 42대이며 전국 충전소는 10곳에 그치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이라는 미국에도 수소 충전소는 거의 없다. 시장 자체가 없다.

상황이 이런 데도 요즘 정부와 현대차는 새삼 수소차에 '필'이 꽂힌 것 같다. 정부는 지난 6월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수소차 1만대를 보급하고 수소충전소 100곳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또 수소차를 살 때 개별소비세를 400만원(전기차는 200만원)까지 깎아주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7월 초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우리는 세계 최초로 수소차를 상용화한 기술력이 있는 만큼 미래 친환경차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수소차 보급과 확산을 위한 민관합동 협의체까지 만들었다. 정부가 앞이 불투명한 수소차 육성에 너무 앞서 나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는 "전기차 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 자동차업계는 여기에 뒤떨어져 있으면서 수소차에 매달리고 있다"며 "수소차 지원은 특정기업(현대차)에 편향된 정부시책 아닌가"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우리가 전기차건, 수소차건 모두 선도하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지금은 전기차에 기업의 개발 역량과 정부 지원책을 집중해야 할 시기다. 산업연구원(KIET)은 한국의 전기차 경쟁력이 테슬라에 비해 2년 이상 뒤져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격차는 그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지난해 한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4330대로 세계의 0.3%에 불과하다. 충전시설은 고작 400개로 일본의 1만2000개와 비교가 안된다. 전기차 보조금은 줄어드는 추세다. 이대로 두면 우리는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낙오할 판이다.


'큰 곳보다 급한 곳을 두라'는 바둑 격언이 있다. 집을 많이 짓는 곳보다는 당장 처리해야 할 곳을 먼저 둬야 형세를 그르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대차도, 정부도 미래 친환경차 전략과 관련해 선택과 집중이 절실히 요구된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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