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한진해운 사태, 뭣이 중헌디?

차석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04 17:43

수정 2016.09.04 17:43

[데스크 칼럼] 한진해운 사태, 뭣이 중헌디?

십수년 전 해운업계를 취재할 당시 한진해운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기업이었다.

현대상선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 선사로, 수출입 물류를 책임지는 핵심 역할을 한 것은 물론 귀한 달러를 벌어들이는 달러박스였다. 지금까지 한진해운은 북미, 유럽, 대서양 등 세계 3대 기간항로를 포함해 116개 항로 3600여곳의 목적지에 화물을 운송해 왔다. 전 세계 바다를 누비던 대형 컨테이너선의 한진 마크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미국 롱비치항 한진해운 전용터미널의 웅장함은 뿌듯함 그 자체였다. 터미널 준공식 때 참석한 글로벌 화주들의 면면을 보면 그 어느 업종보다도 빨리 글로벌화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고 앞길을 알 수 없게 됐다. 한진그룹은 에스오일 지분을 팔아 한진해운 경영권을 쥐었으나 해운불황이 지속되면서 결국 손을 뗐다. 대한민국 창업 1세대인 조중훈 회장이 수출보국의 웅지를 품고 설립한 한진해운인데 안타깝다.

도대체 왜 한진해운이, 채권단 손에 넘어간 현대상선 등 한국 해운산업이 이 지경까지 몰락했을까. 지난 1977년 설립돼 외환위기 등 그 험난했던 시기도 잘 견뎌냈는데. 40년 만의 최대 위기다.

'예고된 위기는 결코 오지 않는다'라는 증시 격언이 있다. 이미 위기가 예고되면 미리미리 대비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 '위기는 예고 없이 온다'. 1997년 외환위기가 그랬다.

2000년 초 닷컴버블 붕괴, 2007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2008년 10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 글로벌 위기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우리 기업들의 위기는 왜 사전대응이 되지 못하는 걸까.

사실 한진해운은 이미 작년부터 경고등을 울리고 있었다. 해운업계는 유동성을 공급해 위기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채권단은 자구 노력만 주문했다.

법정관리 결정 이후 한진해운 선박들이 세계 주요 항구에서 올스톱되면서 벌어진 글로벌 물류대란으로 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우리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월마트 등 미국의 대형 화주들이 법적 소송에 나설 태세이고, 미국 정부가 나설 경우 한·미 간 통상마찰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나라 망신을 자초한 셈이다. 한진해운 처리를 놓고 산업적 중요성은 배제된 채 금융논리로만 접근한 것이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진해운 주가는 추락했다. 1240원. 1주를 갖고는 담배 한 갑도 살 수 없다. 오늘 거래는 재개되지만 투자자들은 이미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40년 이상 성장해온 한국 해운산업은 과거로 후퇴하게 됐다.


또다시 한진해운 같은 글로벌 선사를 키우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알 수 없다. 조선.해운업을 시작으로 대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기업의 생사를 쥐고 있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뭣이 중헌디?"

cha1046@fnnews.com 차석록 증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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