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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승자독식의 명암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08 17:15

수정 2016.09.08 17:15

정 의 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여의나루] 승자독식의 명암


우리나라 대표 국적해운사인 한진해운이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사실상 파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벌써부터 물류대란이 발생하고 있고, 수많은 투자자와 채권자의 피해 등 여파가 만만치 않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관련 산업의 피해가 20여조원에 이르고, 2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도대체 해운업계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들이, 언론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도들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있어 왔는가. 그동안 정부나 금융기관, 그리고 대주주는 무얼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진해운 등과 같은 해운사의 과다한 용선료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구조조정 필요성도 꽤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걸로 기억한다.
진작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구조조정(양대 해운사의 합병 등)을 서둘러 왔었다면, 세계 5위 해운강국의 지위는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해운산업은 그 특성상 규모가 커야만 비용을 줄이는 업종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대마불사(大馬不死)형의 업종이라고 한다. 그래서 좀 더 많은 배를 빌려 더 많은 물량을 소화해 재미를 보았으나 경기가 꺾이기 시작하니 물동량은 줄고 용선료는 그대로 내야 할 수밖에 없어 결국 역마진이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천문학적으로 커지게 된 결과일 것이다. 2009년이라고 기억이 된다. 세계 경제 역사상 잊지 못할 한 페이지가 된 해이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세계 총 생산량이 2%나 감소하고 상품교역 규모도 전년 비 22%나 감소하니 당연히 해상물동량도 4.5%나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운송해야 할 화물보다 선박의 과잉으로 돌아서는 해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조선소에 건조주문은 뚝 끊기고 각국 해운사들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운송수입을 감내하며 피 말리는 경쟁을 해 오고 있다. 수요에 대한 공급탄력성이 낮은 해운서비스의 특성상 해상물동량이 10% 줄어 들었다고 운임이 10%만 깎이지 않는다고 한다. 수급균형이 깨지는 순간 운임은 반으로, 심하면 그 이상으로 폭락하고, 또 반대의 상황에서는 천정부지로 폭등한다고 한다. 지금은 원가이하의 밑지는 장사가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유럽선사를 중심으로 한 세계 최대의 선사들이 이 고통스런 경쟁시기를 해운시장 장악의 기회로 삼고 있을지 모른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결정이 되던 그 날, 세계 유수의 해운선사의 주식은 일제히 상승세를 보였다. 바로 승자독식의 기대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 희생양이 우리의 주축 해운사인 한진해운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출주도형 국가경제 발전에 커다란 버팀목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는 승자독식이라는 트렌드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승자가 되도록 궁리를 하고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개별 기업이, 산업이 스스로 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정부도 이런 추세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으로 본다. 미시적 규제방식이 아닌 거시적 안목이 절실하다. 세계적인 트렌드와 업종별 전망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정책적 지원이 그것일 게다. 물론 필요하다면 과감한 구조조정도 해야 한다. 기업에만 맡기기에는 기업 실패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폐해가 너무 크다.
지난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대기업이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조정을 훌륭히 소화해 낸 우리다.
이번 사태를 한 기업의 퇴출로만 끝낼건지 다시 한 번 해운강국으로 거듭날 계기로 삼을 건지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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