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법조 3륜의 추락, 동화 상실시대

이두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08 17:15

수정 2016.09.08 17:15

[데스크 칼럼] 법조 3륜의 추락, 동화 상실시대


검사 출신 판사가 있다. 검사 시절 유럽의 한 국가 사법시스템 연수 중 검찰과 법원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고차원의 사법정의를 실현하는 걸 보고 판사로 말을 갈아 탔다. 늦게 법관이 된 만큼 원점에서부터 다시 배우자는 자세로 휴일, 휴가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방법원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판사가 그였고, 주변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히, 열성껏 찾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검사 출신이어서 검찰 편을 든다는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오로지 법리와 증거에 의해 판단했다.

일에 파묻혀 사느라 외로울 틈도 없다고 했다.
시시콜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감하게 됐다고도 했다. 그러나 좋아 보였다. 자신의 직무에 소명감을 갖고, 사회적 이목이 쏠리지는 않지만 치우치지 않는 판단을 위해 사건 당사자의 말에 성심껏 귀를 기울이며 진실을 찾아가는 노정(路程)에 보람을 느끼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시쳇말로 전관예우니 금품로비니 사사로운 인연 따위의 불순물 개입은 어려울 것 같았다.

법조 3륜이 무너진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높다. 진경준 전 검사장은 68년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비리 혐의로 해임된 첫 검사장이 됐다. 이번에는 현직 부장검사가 중.고등학교 동창 사업가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고 사건무마 청탁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돼 고강도 감찰을 받고 있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 사건과 관련, 구속기소됐다. 급기야 인천지법 김수천 부장판사가 지난해 1월 명동 사채왕 사건의 최민호 판사 이후 1년7개월 만에, 2006년 법조 브로커 사건에 연루된 조관행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후 10년 만에 현직 판사 신분으로 억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견제와 균형을 통해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조 3륜의 각 축이 동시에 사법정의를 짓밟았다는 질타도 무리는 아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읽어주던 동화에서 권선징악을 배우고 백성 간 갈등을 풀어주던 원님의 지혜를 통해 마음속 어렴풋이 품었던 꿈이 판사, 검사, 변호사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사법정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약자를 보듬고 거악에 대해서는 추상 같은 징벌을 통해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금권과 권력, 명예에 대한 탐욕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을 것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많은 청년들이 일상의 즐거움을 미뤄두고 법전에 매달린다.

그러나 최근 잇달아 불거지는 법조 3륜의 일탈을 보는 청년들에게 꿈을 이루면 그 같은 부와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줄지, 성취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절망해서 꿈을 포기할지 두려움을 갖게 된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것이 더 영광"이라는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법의 지배를 최고 가치로 내세우는 법조계의 수레바퀴 3개가 이렇게 비리로 삐걱거려서야 우리 사회에 미래는 없다.
법조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청년, 어린이들에게 미래 법조인의 꿈을 품지 못하게 하는 참담한 일이다. 시스템은 시스템대로 개선하되 무엇보다 법조 3륜 구성원 각자가 초심으로 돌아가 옷매무새를 고치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 이상은 기회가 없다.

doo@fnnews.com 이두영 사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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