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중국, 대북정책 바뀔까

최근 중국 항저우에서 한·중 정상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처음으로 만나 서로의 속내를 드러낸 표현이 '구동존이'(求同存異)와 '구동화이'(求同化異)다. 이 화려한 사자성어 뒤에는 사드에 대한 양국의 상반된 입장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지 불과 나흘 만에 양국이 가장 우려하던 북한의 5차 핵실험이 현실화되면서 이 같은 대립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중국은 그동안 민감한 대외 외교정책을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된 사자성어를 통해 상대국에 전달해오곤 했다.

'구동존이'는 서경(書經)이 원전이고 모택동이 사용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실제로 사용한 사람은 지난 1970년대 초 총리였던 저우언라이다. 저우 총리는 '죽의 장막'을 걷고 미국과 대화에 나서면서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자'는 실리정책의 구호로 이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미국의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하면서 미·중이 공동번영의 길로 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번에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에서 사용한 '구동존이'의 의미는 사드 배치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상호 공동이익을 위해 노력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국이 한국에 사드 시스템을 배치하는 것에 반대한다"면서도 "쌍방이 현재의 협력 토대를 소중히 여기고 어려움과 도전을 극복해 중·한 관계를 안정된 발전 궤도에 올려놓자"고 밝힌 부분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박 대통령은 '구동화이', 즉 '이견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넓히자'며 시 주석에게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이를 수용해 줄 것을 압박했다. 하지만 두 정상의 만남은 중국 관영 인민일보의 표현대로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는 데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을지 모르지만 사드 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끝나 사실상 평행선을 달렸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박 대통령이 사드에 반대하는 중국과 러시아 정상을 잇따라 만나 설득 작업을 펼쳤으나 별다른 성과물을 얻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오른 가운데 북한의 5차 핵실험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은 중국이 주최국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식 날 미사일을 발사해 잔칫집에 재를 뿌린 것도 모자라 세계에 중국의 위상을 과시했다며 G20의 성공을 대대적으로 과시하는 시점에 또다시 5차 핵심험을 강행했다. 북한은 정권 수립 68주년을 기념해 9일 지진 규모 5.0 이상의 역대 최대 핵실험을 시행했는데 이는 올해 1월 6일 4차 핵심험 이후 불과 8개월 만이다.

그동안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등 대북 압박정책 기조를 유지해오다 한국과 미국이 한반도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관영 매체들을 통해 '사드 때리기'에 나서면서 미묘한 변화를 보였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의 경고에도 5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중국의 대북정책에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은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핵 해법으로 "6자회담 틀 내에서 각 당사국이 균형적인 해결을 통해 반도(한반도)의 장기적인 안정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이 5차 핵실험에 나서면서 이 같은 주장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됐다.

AFP통신은 "이번 핵실험은 북한의 최고 동맹국인 중국의 얼굴을 또 한번 때리고, 북핵 프로그램과 관련한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을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AP통신은 "올해 두 번째 핵실험은 북한의 핵 야망을 멈추기 위한 서방의 압박에 저항하는 대응일 수 있다"며 어떤 실험이든 "유엔에서 (북한에 대한) 새롭고, 더 강력한 제재로 이어질 것이며 이미 최악인 북한과 주변국 간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드에 반대하면서 6자회담 틀 내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던 시 주석이 북한의 도발에 먹칠을 당한 셈이다. 반면 한국은 북핵에 대응하기 위한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따라서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에 위기 국면이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구동존이'에서 '구동화이'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hjkim@fnnews.com 김홍재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