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스폰서가 기가 막혀

세상에 공짜 접대는 없어
권력과 돈의 유착 끊으려면 스폰서 문화부터 바로잡아야

스폰서가 고위 공직자들에게 일종의 필수품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돈이 필요한데 뇌물을 받을 수 없으니 함께 가서 직접 돈을 써라. 그 시절 스폰서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업자에게 접대는 받아도 금품은 받지 않는다는 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랑스럽게 술자리에 스폰서를 대동하기도 했다. 스폰서의 존재가 부패가 아니라 청렴의 증거로 인식된 것이다. 소가 웃을 일이다.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최근 모 부장검사가 사기 혐의로 고소된 고교 동창 사업가에게 수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뒤숭숭하다. 그 사업가는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자신은 잘나가는 동창 부장검사의 스폰서였다고. 부장검사는 사업가 친구가 도와달라고 요청하자 사건을 담당한 수사검사들을 찾아가 식사를 하며 무마를 시도했다. 며칠 전에는 다른 부장판사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서 레인지로버라는 최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정 대표도 그 부장판사의 스폰서였을 것이다.

날마다 전국 법정에서는 수많은 재판이 열린다. 검사들은 범죄자의 죄를 추궁하고 판사들은 벌을 내린다. 검사와 판사는 그만큼 지엄한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 일부가 법정 밖에서 부정한 금품을 받고 죄진 사람들의 뒤를 돌봐주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법정에 선 범죄 혐의자들은 검사나 판사를 바라보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문제의 부장검사와 부장판사는 자신들의 명예와 미래를 송두리째 거는 모험을 왜 했을까. 세상에 공짜 접대는 없다. 반드시 나중에 값비싼 청구서가 되돌아 온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스폰서 한 명쯤은 있어야지. 누가 감히 날 건드려." 실상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법하다. "선배들 그렇게 하고도 무사했어. 설혹 운이 나빠 적발이 된다 해도 손을 쓰면 막을 수 있어." 이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세상이 변해도 권력과 돈의 유착 비리는 뿌리 뽑히지 않았다. 고무줄 잣대에 의한 법 적용은 은밀한 스폰서 문화를 온존시킨 보호막이었다. 법원과 검찰이 처음 사건이 불거졌을 때 쉬쉬 하며 적당히 넘어가려 했던 것을 보면 이런 심증이 간다. 권력 내부의 비리가 외부로 까발려지는 것을 막으려는 강한 연대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스폰서(sponsor)는 '보증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스폰데레(spondere)'에서 온 말이다. 원래는 행사나 자선사업 등에 기부금을 내는 후원자란 뜻이었다. 20세기 들어 TV나 라디오에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광고주란 의미로도 사용됐는데 그 경위가 재미있다. 1920년 무렵 미국에서 민간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자 어느 부인이 유능한 음악가들을 모아 합창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사서 매주 찬송가를 방송했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이 '미세스 스폰서(Mrs. Sponsor)'였다. 이후 스폰서에는 광고주란 뜻이 추가됐다.

한국이 스폰서에다 세 번째 말뜻을 달아주고 있다. 요즘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에 '스폰서'라고 치면 '스폰서 부장검사'나 '스폰서 부장판사'와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어감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좋은 일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사람'이란 본래의 고귀한 뜻은 사라지고 '부정한 일에 뒷돈을 대는 사람'이란 뜻으로 변질됐다. 머잖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한국이 스폰서의 말뜻을 오염시킨 나라로 소개될지도 모르겠다. 미세스 스폰서가 살아 있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