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확 바뀐 취재환경...기자들도 현장 적응 중

이정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28 13:02

수정 2016.09.28 14:38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에 들어가면서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환경도 확연히 바뀌었다. 그동안 취재 지원 차원에서 제공됐던 식사나 무료주차, 출장비 등의 혜택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환경에 맞게 대처하게 된 것이다.

■더치페이도 부담스러워 '약속 절벽'
경제지 건설·부동산 출입기자 김모씨는 최근 아내로부터 용돈을 올려받았다. 즐겨찾던 한 건설사 기자실의 경우, 김영란법 시행에 맞춰 점심식사를 제공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날 다른 언론사 후배들과 점심을 먹기로 한 김씨는 "식사비용 문제를 떠나 기자와 기업 홍보실간에 터놓고 얘기를 주고받던 시간이 주로 점심시간이었는데 아쉽게 됐다"며 "김영란법으로 인해 당분간 점심, 저녁 약속이 대부분 끊긴 상태로, 더치페이로 만나자고 해도 홍보실 입장에서도 아직까지는 사적인 식사자리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증권 출입기자 이모씨는 김영란법 시행 첫날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했다.
그동안 증권사 기자실마다 상주 기자단이 꾸려져 매체별 지정좌석이 있었으나 이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씨는 "그동안 지정좌석에 앉지 못했던 인터넷매체 기자들과 '자리경쟁'이 생길 것 같아 최대한 빨리 출근했다"며 "특혜가 사라지게 되면서 매체간 경쟁이 더 치열해져 여러모로 피곤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 대학교 다닐때 도서관 자리를 일찍 잡기 위해 새벽에 등교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는 후문이다.

대중교통 이용도 늘어나게 됐다. 기자실이 있는 사기업건물이나 공기업건물 등의 경우, 대부분 그동안 기자들에게 주차 혜택을 제공했으나 이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 광화문의 K그룹 빌딩의 경우, 그동안 취재 목적으로 방문을 하면 무료주차가 가능했으나 이제 1시간에 9000원, 1일 최대 주차요금 4만원을 내야 한다. 일간지 기자 김모씨는 "긴급한 사안을 취재하기 위해 차를 급하게 대놓고 뛰어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부딪쳐도 이젠 주차장을 찾아 돌아다녀야만 한다"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다는 업무적 특수성을 감안할 때 주차는 너무한 처사인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제품이나 신차를 먼저 체험해보고 쓰는 체험기나 시승기 형태의 기사도 전보다 쓰기 어려워졌다. 체험기사를 위해 물품을 빌릴 때도 렌트비를 따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공식적인 신차 시승행사 외 주말이나 주중에 며칠간 차를 빌려 시승해볼 경우, 비용을 내야 한다.

한 일간지 자동차 출입기자는 "누가 자비를 내고 굳이 시승기를 쓰려고 하겠느냐"며 "일주일에 한 번 써야 하는 시승기 코너가 있어서 김영란법 시행 전 미리 많이 타보고 시승기를 비축해놨지만 이마저 끊기면 다른 코너를 만들어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전자제품 체험기를 쓰던 또 다른 경제지 기자 김모씨도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고가의 장비는 아예 하지 않거나, 직접 업체를 방문해서 체험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기업 해외출장·해외연수 '뚝'
기업체를 통해 해외연수를 가거나 기업체 비용으로 출장을 가는 관행도 없어졌다. 삼성언론재단과 LG상남언론재단이 매년 10~15명 선발하던 장기 해외연수 프로그램 역시 특혜로 지목돼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기 때문이다. 2~3년 뒤 기업체 해외연수를 노리던 한 기자는 "신청자격인 경력을 채워 해외연수를 가는 것이 꿈이었는데 아쉽게 됐다"며 "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으로 해외 연수를 가는 것은 가능해 이곳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기자로서의 자존심을 챙길 수 있게 됐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2년차 경제지 기자의 경우 "그동안 기업체에 포럼 참가요청 등을 홍보실에 전달하면서 자괴감도 느꼈으나 이제 '기사만 잘 쓰면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일간지 기자도 "그동안 기업체가 지원하는 출장을 갈 경우, 해당 기업 행사에 '동원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기사 역시 우호적으로 쓸 수 밖에 없었는데 차라리 정말 중요한 해외 행사에만 회사비용으로 가게 돼 어떻게 보면 더 낫다는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한편, 일부 매체의 경우 기자들을 대상으로 김영란법 내용을 준수할 것을 다짐하는 서약서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실상 위법 책임을 기자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한 경제지 기자는 "아직 기업도, 기자들도, 심지어 법무법인도 김영란법에 대해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인데다가 관련 판례마저 없는 초기에 기자만 너무 몰아붙이는 느낌"이라며 "한국언론의 속성을 잘 반영하지 못한 데다 취재가 전보다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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