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 걸음] 책임감 없는 국회의원들이 두렵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28 17:22

수정 2016.09.28 17:22

[이구순의 느린 걸음] 책임감 없는 국회의원들이 두렵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최고경영자(CEO)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동통신 요금 50% 인하를 발표한다. 국회의 요금인하 요구에 부응해 전 국민의 통신요금을 절반 깎아주겠단다. 그 대신 투자비가 부족하니 5세대(5G) 이동통신망 투자는 3년 미루기로 했다.

그다음 일어날 일은? 네이버와 카카오 주가가 폭락할 것이다.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들은 잇따라 사업을 접게 될 것이다. 국정감사에 맞춰 쏟아지는 국회의원들의 보도자료를 보면서 그려본 풍경이다.


통신망은 공기 중 산소 같은 존재다. 산소는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지만, 정작 조금만 부족하면 바로 숨쉬기가 힘들고 생명의 위협도 느낀다. 문제는 산소가 부족하면 약한 존재들이 먼저 죽어간다는 것이다. 사람은 한동안 버틸 수 있지만 몸집이 작은 식물들부터 시들어간다.

통신회사들은 통신망 투자를 2~3년 미뤄도 이미 갖춰놓은 망 위에서 싼 통신요금을 받아가며 버틸 수 있다.

그러나 5G를 염두에 두고 홀로그램,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비서, 자율주행차 같은 서비스를 개발 중이던 스타트업들은 3년을 버틸 수 있을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은 가장 아랫단에 통신망 회사가 있다. 이들이 통신망에 투자해 빠른 데이터 속도를 보장해주면 그 위에서 구글이나 애플, 네이버 같은 회사들이 서비스를 만든다. 내일의 구글과 네이버를 꿈꾸는 많은 스타트업들도 통신망 위에서 성공의 꿈을 꾼다. 해마다 국정감사장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겠다고 벼르는 국회의원들은 통신회사를 향해 수조원씩 부당한 통신요금을 받아갔다고 지적하고, 통신요금을 깎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올해도 변함이 없다. 야당은 아예 통신비 인하를 정책과제로 정했다. 기본료도 폐지하고, 통신요금도 내리란다.

그런데 정작 통신요금을 깎은 뒤 일어날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로서 언뜻 듣기에는 좋은 말이다. 그런데 통신요금을 인하한 뒤 통신회사들의 투자비는 어찌 감당해야 하는지 대안이 없다. 땅이라도 파서 투자해야 할 판이다.


나비효과라는 게 있다.

통신요금을 인하한 뒤 투자가 지연되고, 네이버·카카오 주가가 폭락하고, 5G에서 구현될 새 서비스를 개발 중이던 스타트업들이 길을 잃고, 국민이 새 서비스를 맛보지 못하게 되고, 세계 최강 ICT 국가라고 자랑하던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사라지는 나비효과를 신중히 고민한 국회의원의 대안 있는 정책은 통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보도자료 한 건이 ICT로 퀀텀점프를 꿈꾸는 수많은 대한민국 스타트업들에 어떤 나비효과로 이어질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의 무책임이 두렵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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