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한진해운 사태 한달, 우리나라가 부끄럽습니다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29 17:11

수정 2016.09.29 22:20

[데스크 칼럼] 한진해운 사태 한달, 우리나라가 부끄럽습니다


참으로 3류국가다. 최근 한달 동안 한진해운 사태를 지켜보며 순간순간 터진 장탄식이다. 국내 1위, 글로벌 7위의 해운선사라는 규모를 떠나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수출입을 책임지는 기간산업을 한순간에 망가뜨려 놓고 이제 와서 정부도, 채권단도, 오너도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시계를 한달 전으로 되돌려보자. 용선료 등 유동성위기를 겪던 한진해운이 논란 끝에 8월 31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한진해운이 속한 해운동맹 CKYHE는 기다렸다는 듯 즉각 퇴출을 통보했다. 미국, 일본, 중국, 호주 등 세계 각국은 "현금이 있어야만 하역작업을 할 수 있다"며 한진해운 선박 입항을 거부했다.
입항을 거부당한 한진해운 선박들은 오갈 데 없이 항구 근처를 유령선처럼 떠돌았다. 심지어 중국 상하이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연료를 구입하지 못해 운항을 멈추는 일까지 발생했다.

운임도 하루 만에 솟구쳤다. 한진해운 배를 이용하던 화주들이 다른 나라 선사들과 협의하면서 운임이 기존보다 2배가 오르기도 했다. 영국 등 일부에서는 해운시장 정상화를 위해 정부가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한진해운은 세계 7위의 선사지만 아시아~미주노선 점유율은 무려 7%에 달했다. 세계 1~2위인 머스크(9%), MSC(7%)와 대등한 수준으로 한진해운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도 놀랐다. 그러나 이 같은 경고는 이미 한참 전부터 나왔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한진해운 지원을 놓고 정부와 채권단이 등을 돌리고 있던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120만개의 컨테이너가 제대로 운용되지 못해 물류대란이 벌어지고, 140억달러(15조원)에 달하는 화물운송 지연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삼성전자는 해운물동량 가운데 40%를, LG전자는 20%대를 한진해운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귀를 닫았다. 그들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사회적 파장은 우려하는 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며 산업계의 우려를 기우로 취급했다. 더 나아가 "(한진해운을 청산시키더라도) 부실채권으로 인한 손실을 이미 반영했기 때문에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도 적고 고용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와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정부는 눈뜬장님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해수부는 뒤늦게 "실물경제를 담당하는 부처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한진해운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을 해왔다"고 책임을 금융당국에 떠넘겼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술 더 떴다. "해수부와 한진해운 사태를 계속 협의해 왔다. 한진해운으로부터 화주와 운송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며 이 같은 사태의 책임을 한진해운과 해수부에 돌렸다.

정부는 더 나아가 책임을 한진해운 대주주에게 돌리고 있다. 대한항공이 사태 정상화를 위해 빨리 자금지원에 나서라며 협박하고 있다. '죽은 자식 어루만지기'다. 정부의 압박에 한진해운 대주주인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은 사재 출연을 비롯한 한진해운 지원에 고심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을 지원하게 되면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고작 600억원이면 막을 수 있었던 해운대란을 이렇게 키웠다. 세계적으로 조롱거리가 될 일이다.
내일이면 한진해운 사태 한달을 맞는다. 해법은 아직도 없다.
우리 국민은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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