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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일당 국가'가 된 영국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03 16:55

수정 2016.10.03 16:55

[fn논단] ‘일당 국가'가 된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모국인 영국이 사실상 '일당 국가'가 되고 있다. 120년 역사 가까이 되는 야당인 노동당이 집권 보수당을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효과적인 야당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보수당이 앞으로 10년은 더 집권하리라는 전망이 자주 나온다.

노동당이 이런 상황으로 내몰린 것은 지난해 5월 총선 패배 후 제레미 코빈이 당수가 되면서부터다. 코빈은 거의 무명의 의원이었으나 선거운동이 한창 진행되던 중 당내 일부 급진파가 자신들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를 천거하면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총선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이 비슷하리라는 전망과 다르게 보수당이 과반을 확보해 집권당이 되었다.
당시 노동당이 패배한 것은 기존의 중도 우파 전략을 버리고 중도 좌파 쪽에 가까운 강령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년 전 당수가 된 코빈은 더 급진 좌파 성향의 인물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보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강력 비판하고 영국의 핵 잠수함 갱신을 반대한다. 총선 결과에 실망한 20대들이 대거 노동당 회원이 되었고 이들이 50여만명 노동당 전체 회원의 절반을 넘는다. 이들은 코빈을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노동당 하원의원의 3분의 2가 코빈을 불신임해 지난달 당수 선거를 다시 치렀다. 전체 노동당원이 참여한 선거에서 코빈은 61.8%를 얻어 당수로 재취임했다. 신규 당원들의 절대적 지지 때문이다.

반면에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끌어안아야 하는 전통적인 노동자 지지층은 점차 다른 정당 지지로 돌아선다.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비숙련 노동자의 절반 정도가 코빈 당수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총선에 질 거라 여긴다. 또 전체 유권자 중 절반은 코빈 당수가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지지층이나 다른 부동층도 보수당이나 자유민주당으로 지지 정당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중도우파의 이코노미스트가 지난달 15일자 사설에서 '일당 국가'가 된 자국의 정치 현실을 개탄하며 제대로 된 야당 역할을 노동당에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은 내년 초부터 유럽연합(EU)과 EU 탈퇴(브렉시트) 협상을 개시한다. 불확실성이 높고,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감이 커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은 브렉시트 협상의 잘잘못을 따지고 집권 보수당의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난 6월 말 국민투표에서 48.1%가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했다. 하지만 현실은 점차 이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코빈 당수를 비판하며 사임했던 그림자 내각 일부 하원의원들도 당수에게 밉보이면 총선에서 후보로 추천을 받지 못할까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민심은 천심이다. 유권자들은 노동당이 야당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를 바란다. 브렉시트 협상이 장기화할수록 영국 경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에 야당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대선전에 돌입한다. 말의 성찬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국민이 원하는 바를 제시하는 비전과 용기가 있는 후보를 기대한다.
정부의 잘잘못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제대로 된 야당을 응원하고 싶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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