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공기업 임금 이대로 좋은가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03 16:55

수정 2016.10.0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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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공기업 임금 이대로 좋은가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1980년대엔 공기업 인기가 그저 그랬다. 그땐 뭐니뭐니해도 대기업이 잘나갔다. 서울 명동의 증권사 앞에도 줄을 섰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경제가 무한팽창하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다.

공기업이 흠모의 대상으로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외환위기가 아닐까 싶다. 그때 대우를 필두로 민간 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정년을 채우는 건 언감생심, 쉰 전에 회사를 떠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공기업은 달랐다. 왜? 공(公)기업이니까. 설사 수익이 안 나도 망할 수 없는 회사니까. 고용의 안정성 면에서 공기업은 민간 기업을 압도했다. 정년까지 꽉 채워서 일할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매력이었다. 명문대학을 나온 인재들은 사기업 대신 공기업의 좁은 문을 두드렸다.

게다가 연봉도 좋다. '신도 모르는' 몇몇 금융 공기업들은 초일류 삼성전자보다 높다. 과거 공기업은 임금은 낮아도 안정성을 보고 간다고 했는데, 지금은 일단 입사만 하면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다.

이런 공기업 직원들에게 성과연봉제는 천하에 못 돼 먹은 마녀다. 일 잘하면 돈을 더 주고, 일 못하면 덜 주겠다는 것 아닌가. 지금처럼 햇수가 쌓이면 저절로 호봉이 오르는 호사가 끝장이란 말인가. 내가 공기업 직원이라도 숨이 턱 막힌다. 나라도 머리띠 두르고 아스팔트로 뛰쳐나갔을 게다. 일찍이 마키아벨리가 말했다. "사람은 자기 소유물을 빼앗겼을 때보다 부모가 죽은 쪽을 더 빨리 잊는 법이다." 의역하면 자기 재산을 빼앗긴 것은 죽어도 잊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해는 하지만 공기업 직원들이 하나 생각할 게 있다. 혼자만 너무 잘나가면 시샘을 받게 돼 있다. 오랜 불황에 수많은 이들이 짠 연봉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언제 잘릴지 모른다. 정년 60세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정규직은 그나마 다행이다. 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비정규직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속이 뒤집힌다. 귀족노조의 파업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라. 한마디로 '좀 작작하라'는 거다.

공기업은 고임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안정성이야 공기업의 속성이니 그렇다치고 어떻게 고액연봉까지 누리게 됐을까. 나는 그 원인을 고래 힘줄처럼 질긴 낙하산에서 찾는다. 언제부터인가 공기업은 정권의 공신전(功臣田)으로 전락했다. 옛날엔 땅을 줬다. 태조 이성계는 개국 공신들에게 최고 220결(結)을 줬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땅 대신 자리를 준다. 공기업 이사장, 사장, 감사 같은 꽃보직이 바로 공신전이다.

5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낙하산이 하늘을 새까맣게 덮는다. 곳곳에서 낙하산 경영진과 노조 간에 밀약이 오간다. 밀고 당기는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노조가 현수막을 접는다. 그러면 근처 호텔에 묵던 정치인 출신 이사장이 회사 정문으로 들어간다. 둘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단언컨대 세상에 맨입으로 농성을 풀 노조는 없다. 그렇게 공기업 연봉은 다락같이 높아졌다. 그들에겐 윈윈이지만 제3자의 눈엔 짝짜꿍이다.

공기업 연봉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중간 수준이 적당하다.
그러려면 권력부터 반성해야 한다. 더 이상 무자격 낙하산들이 환심을 사려 연봉을 뻥튀기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납세자 자격으로 묻는다. 적자 나면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는 독점기업이 최상급 연봉에 정년 보장도 모자라 파업이라니,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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