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차장칼럼] 원유 패권전쟁, 사우디의 패인은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05 16:59

수정 2016.10.05 17:14

[차장칼럼] 원유 패권전쟁, 사우디의 패인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병법가 손자는 인적.물적 비용을 낭비하면 이기고도 패한 전쟁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 전쟁을 하면 나랏돈이 부족해지고, 무기가 무뎌진다. 사기도 꺾인다. 재정이 바닥나면 이를 틈타 다른 제후들이 일어난다(손자병법, 작전 편)'고 경고했다. 국경 없는 '경제전쟁'이 벌어지는 오늘날에도 2500년 전의 병법이 통한다.

원유 대국 사우디아라비아가 백기를 들었다.
미국(셰일석유)과의 유가 패권전쟁에서다. 지난달 28일 사우디가 주도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8년 만에 '임의적' 산유량 동결에 합의했다. 2년여 전 선전포고는 사우디가 했다. 시장 지배력을 빼앗겼던 40여년 전 '오일쇼크 악몽' 때문이다. 상대는 고비용의 미국 셰일석유업자. 명분은 '유가를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 당시 사우디는 막대한 달러(2014년 8월 7454억달러)를 손에 쥐고 있었다. 사우디는 산유량을 늘렸고, 원유는 넘쳐났다. 배럴당 100달러 하던 유가는 50달러, 30달러로 곤두박질했다. 당시 외신들은 "더 버티는 쪽이 승리할 것"이라고 점쳤다. 사우디는 2년을 버텼지만 졌다.

패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왕가의 부'를 지탱하는 석유였다. 지난 30여년 사우디는 수차례 5개년 발전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석유를 벗어난 경제다각화는 번번히 실패했다. 오일머니가 넘쳐나는데, 석유를 대체할 개혁이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우디 재정수입의 80% 이상이 석유에서 나온다. 석유와 나라 금고(외환보유액)에서 나오는 모든 이익은 사우디 왕가로 들어간다. 이를 왕가가 통제한다. 유가 폭락에 왕가 재정은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재정적자(980억달러)는 왕가 건국(1932년) 이후 가장 컸다. 외환보유액도 급감(7월 5631억달러)했다. 사우디 왕가는 안팎으로 돈줄을 죄었다. 전기.수도요금 보조금을 줄였고, 공무원 급여도 낮췄다. 외국산 담배에 관세를 배로 물렸고, 휘발유 내수 판매가를 60% 이상 올렸다. 설상가상 중동 정세는 더 불안해졌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는 우방국 예멘 내전에 개입했다. 수십억달러의 전쟁비용을 쏟아부었다. 재정난은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진다. 사우디 인구의 70%가 30세 이하 젊은층. 이들의 반정부 민심은 권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왕정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우디의 패인 중 또 다른 하나는 '자본의 힘'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그간 셰일석유기업은 줄줄이 파산했다. 원가(배럴당 45달러선)에도 못 미치는 유가에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셰일석유는 더 강해졌다. 미국 월가의 사모펀드(PE)들이 자금을 댔다. 경영을 효율화하고 생산기술을 혁신하고 있다. 월가의 자본력이 합쳐진 셰일석유기업들은 새 유전을 뚫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우디의 패배로 적대국 이란과 미국, 러시아의 존재감이 높아졌다. 사우디가 원유시장을 또다시 지배할지는 미지수다.
11월 OPEC 총회에서 감산 문제는 최종 담판이 지어진다. 제2차 원유 패권전쟁의 시작이다.
사우디 왕가의 명운이 걸렸다.

skjung@fnnews.com 국제부 정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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