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수명 다한 저금리 정책

지령 5000호 이벤트

부동자금 부동산 시장에 유입돼.. 재건축 시장 불법전매 판쳐
이 불황에 부동산 과열이라니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대정부 발언이 쌀쌀해졌다. 이 총재는 7일(미국 현지시간) "한국의 재정정책은 여력이 있다. 반면에 통화정책은 여력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워싱턴DC 방문 중에 현지 특파원들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다. 앞으로 더는 금리를 내리기 어려우니 정부가 재정에서 부담을 더 짊어지라고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그동안 경기부양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5번이나 금리를 내렸다. 역대 총재들 가운데 재임기간에 그만큼 여러 차례 금리인하를 단행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시절부터 줄곧 정부에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총재의 워싱턴 발언은 이런 기조와는 매우 다르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세계 톱클래스"라고 지적했다. 마침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이 총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었다. 그는 재정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할 나라로 독일, 캐나다와 함께 한국을 꼽았다.

이 총재의 변심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가계부채 급증일 것이다. 그 원인은 한은의 통화완화(금리인하) 정책이다. 한은은 그동안 금융 안정보다 성장 쪽에 치중해 왔다. 성장률 추락을 막기 위해 금리인하로 대응했다. 그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급증했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에 대한 비판론이 강하게 제기된다. 직접적인 요인은 부동산 시장 과열이다. 최근의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광란의 현장이다. 분양가가 오르면서 집값도 뛴다. 부동산 호경기의 막차를 타려는 청약자들이 몰려 청약 경쟁률이 수백대 일까지 치솟았다. 이를 배경으로 아파트 분양이 급증해 내년 이후 주택 공급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수도권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불법 분양권 전매도 극성이다. 한동안 사라졌던 아파트 투기가 재연되는 상황이다.

부동산 과열에 정부보다 한은이 더 놀랐을 것이다. 부동산 과열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한은의 저금리 정책이기 때문이다. 한은의 저금리 정책으로 시중에 과다하게 풀린 자금이 생산적인 분야로 흘러가지 못하고 부동산 시장에 유입돼 과열이 빚어지고 있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과열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연말에 미국이 금리인상을 재개하면 내년 이후 부동산 시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다. 공급과잉으로 집값은 떨어지고, 빚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의 금리 부담이 늘어나면 가계부채 폭탄의 방아쇠를 당길 위험이 있다. 한은은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정부에 끌려 다녔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주택 공급물량 감축을 골자로 한 '8.25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과열과 투기를 잡지 못했다. 오히려 병을 키운 격이 됐다. 시기를 놓쳐 약이 듣지 않으며 상처는 덧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와 세계적인 경기 침체, 제조업 쇠퇴 등에 대한 근원 처방 없이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리자는 안이한 발상이 화근이었다. 한은이 고민에 빠졌다.
금리를 올리자니 시장 충격이 우려되고, 저금리를 유지하자니 부동산 과열이 걱정스럽다. 그러나 저금리 정책의 부작용을 보고서도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이 총재가 금리를 더 내릴 수 없다고 버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금리인상의 신호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