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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케미포비아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11 17:29

수정 2016.10.11 17:29

(Chemophobia·화학제품 공포증)
[여의나루] 케미포비아

가습기 살균제에서 출발한 공포가 이젠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증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엔 하루에도 몇 번씩 써오던 치약이 문제란다. 가뜩이나 가습기 살균제로 놀란 시민들이 여기저기 치약을 버리느라 정신이 없다. 정부가 모든 치약을 조사하고 신속히 그 결과를 발표했다고는 하나, 그 발표를 얼마나 믿어주기나 할까 의문이다. 회수 의약품 공고를 보고 있노라면 그 종류도 많아 찾아내기도 힘들다. 그리고 치약에서 끝날 문제도 아니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검찰조사가 본격화된 이후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의 사용을 극단적으로 꺼리는 소위 케미포비아(Chemophobia)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더욱 문제인 것은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과장된 유해정보가 범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화장품, 세면용품, 탈취제 등으로 그리고 심지어 가구와 벽지 등 물건 그 자체에 대해서도 꺼림직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엔 이 공포증의 원인은 독성물질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니 우리가 스스로 헤아려 낼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원래는 정부의 규제나 공신력 있는 기관의 안정성 인정 등으로 해결이 됐어야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정부나 전문가 또는 기업이 인증한다고 해도 한번 깊어진 불신의 벽이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필자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CMIT·MIT라는 물질의 독성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 성분은 단독으로 사용되지 않고 주로 혼합물질로 사용하므로 극소량일 경우에는 안전에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도 치약 제조에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허용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비교적 여유로운 규제범위 내에서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되짚어보면, 실로 불신의 연속이었다.

사건이 세간에 문제시되었을 때 정부나 기업의 반응이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만 판매가 허가된 제품이 수많은 사람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 대해 신속히 그리고 투명하게 파헤쳐주지 못했고, 친기업 정책의 가림 속에서 너무도 태연한 대처방식에 분노하기도 하고, 다시는 믿어주지 않기로 했을지 모른다. 결국 지금 우리의 케미포비아는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증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에 대한 공포증일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하루라도 화학제품 없이 살 수 없다. 또 수많은 화학제품이 얼마나 많이 해충과 질병을 퇴치했는지, 식량증산과 인류의 사망률을 낮추었는지 생각해보라. 또 현재의 과학기술로 모든 안정성을 검증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분석기술이 더 발달되면 지금은 안전한 것이 유해할 수도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나는 건 과거의 예에서 흔히 보아왔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 모두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공포증의 확산은 곤란하다.
자연추출이니 친환경이니 하는 물건만을 쓰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세상 모두가 노케미(No-chemi)족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소비자, 기업, 전문가, 정부가 서로 신뢰하는 다시 말해 신뢰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 기업은 사건을 은폐, 축소만 하려 하지 말고 학자들은 검증 결과를 조작하지 말아야 하고 소비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흥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 차분하고 스스로에게 정직해져서 우리 사회가 훨씬 안전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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