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제3자가 갤노트7 사태를 대하는 자세

"애초에 급하게 서두르면 안 된다고 말렸잖아. 고집부리더니 이 꼴이 뭐야? 이렇게 떨어진 성적을 어떻게 할 거야? 진짜 속상해 죽겠네." 고1 아이의 중간고사 성적표를 보고 버럭 짜증을 냈다.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대학 입시에 유리하도록 선행학습 학원을 다니겠다고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하도 졸라대서 학원을 보냈는데, 선행학습을 시작한 뒤 처음 받아온 중간고사 성적표가 엉망이었던 거다. 선행학습에 신경쓰다 보니 정작 고1 학업에 소홀했던 게 이유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짜증 반, 호통 반, 훈계 반 섞인 말로 한참을 퍼부었더니 결국 아이는 눈물을 쏟는다. 말 없이 훌쩍거리기만 하더니 내 짜증이 끝난 뒤 슬그머니 한마디 한다. "내가 성적 나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잘해보려고 하다가 이렇게 된 거잖아. 내 성적표에 제일 속상한 사람은 나잖아."

올 초 전 세계의 찬사를 한몸에 받으며 등장했던 갤럭시노트7이 엉망이 됐다. 소비자 안전을 위협하는 사고가 발생해 리콜을 했는데 리콜한 제품도 사고가 잇따라 생겼다.

결국 세계의 찬사를 뒤로하고 갤럭시노트7은 시장에서 사라질 운명이 됐다.

갤럭시노트7 사태를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제3자들의 입방아가 쏟아지고 있다. '애초에 너무 조급했다. 애플보다 한발 빨리 시장에 제품을 낼 욕심에 개발이 부실했다' '세계 최고 스마트폰 회사라는 자만심에 빠져 꼼꼼히 품질검사를 하지 않은 것 아니냐' 등등의 지난 일을 꺼내든다. 또 '삼성전자가 문책인사를 할 것이다' '스마트폰 사업부 전체에 대대적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다' 같은 막연한 예측도 뒤따른다.

요 며칠 갤럭시노트7 사태를 둘러싼 입방아들을 들으며 괜히 마음이 편치 않다. 갤럭시노트7이 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잘 팔렸다면 나를 포함한 제3자들은 뭐라고 말했을까. '애플보다 한발 빨리 시장에 제품을 내놓은 전략이 신의 한 수였다' '역시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답다'고 했을 것 아닌가.

나도 갤럭시노트7 기사를 쓰면서 자꾸 손이 '조급했다' '자만했다'는 단어들을 꺼내든다.
그러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불과 서너달 전에 세계 최고 기술이라고, 진정한 혁신은 이런 것이라고 쓰던 손이 왜 이러는 걸까.

삼성전자가 불량폰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좋은 제품 만들어 잘 팔아보려다 생긴 일 아닌가. 무엇보다 갤럭시노트7 사태에 제일 속상한 당사자는 삼성전자 아니겠는가. 나를 포함한 제3자들이 갤럭시노트7 사태를 대하는 자세는 지난 일, 앞일 몽땅 늘어놓고 입방아를 찧는 게 아닐 듯하다. 갤럭시노트7 사태가 원활히 수습되도록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아닐까. 당사자가 냉정하게 원인을 가려낼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 아닐까. 오늘 저녁에는 성적표 사건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는 아이에게 피자라도 한 판 사줘야겠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