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애널리스트가 소신 보고서를 내려면

차석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13 17:17

수정 2016.10.1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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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애널리스트가 소신 보고서를 내려면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와 벵트 홀름스트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가 공동 수상했다. 이들이 연구한 '계약이론(contract theory)'을 들여다보면 '정보의 비대칭성'을 문제 삼고,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두 사람은 계약이론을 근간으로 경제주체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날 선 경고와 함께 이를 바로잡는 데 힘을 쏟았다. 홀름스트룀 MIT 교수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수상 후 기자회견에서도 "기업 경영에서 투명성이 보장돼야 주주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한미약품 사태는 기업 경영에서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계약해지 공시 이전에 공매도가 갑자기 20배 이상 증가했다.
사전 정보유출 가능성을 떨칠 수 없는 이유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늑장공시로 주가는 폭락했고,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봤다. 한미약품은 그동안 쌓아올린 좋은 기업이미지도 흔들리고 있다.

증권업계 전문가는 "한미약품 정도의 대형 상장사가 장 전이나 장 후에 공시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면서 "그것도 장 중인 오전 9시30분에 했다는 건 내부 관계자들이 일부러 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말을 빌리면 이미 미국에서 갤럭시노트7이 터졌을 때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 목표가를 40만~50만원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교환할 정도로 심각성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목표가를 낮춘 곳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리서치는 돈을 버는 부서가 아니지만, 투자은행(IB)이나 법인영업으로 벌어다주는 수익을 생각하면 매도 의견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발화 악재는 무시되고, 지배구조 개선이나 실적이 좋은 반도체부문만 부각시켜 목표가 하향 조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 사이에서는 반성의 목소리도 있지만 여전히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는 증권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삼성전자는 이번 사태를 극복하고 주가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런 정보를 알지 못한 투자자들은 중요한 판단 기회를 갖지 못한 셈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상장사들이 스스로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 즉 시장 감시자인 애널리스트나 회계법인이 갑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제도적으로 보장이 돼야 한다. 예를 들어 리서치부서를 증권사 내에서 독립시키든지, 리서치별로 등급을 매겨서 제대로 된 분석보고서를 낼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상장사 관계자와 리서치센터장들을 불러 모아놓고 애널리스트의 분석이 제대로 나올 수 있게 회초리를 들기로 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새삼 인식한 셈이다. 엊그제 이 같은 내용을 단독 보도한 본지 기사를 읽고 전화를 걸어온 한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금융당국이 몽둥이를 들지 않고 회초리만 대고 만다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cha1046@fnnews.com 차석록 증권부장 .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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