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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더불어 사는 조선선비의 경제학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19 17:06

수정 2016.10.19 17:06

[fn논단] 더불어 사는 조선선비의 경제학

'상인 백규(白圭)를 곁눈질하라.' 사농공상의 성리학에 물든 조선 선비가 천한 장사꾼을 배우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서유구는 '임원경제지' 마지막 지의 제목을 장사 수완이 뛰어난 백규를 흘겨보라는 의미로 '예규지(倪圭志)'라 붙였다.

40대 중반, 벼슬에서 물러나 향촌생활을 시작한 서유구는 그동안 쟁기 한번 잡아보지 않고 음식만 축낸 자신을 반성하며 '예규지' 서문에 이렇게 썼다. "우리나라 사대부는 스스로 고상하다고 표방하며 으레 장사를 비천한 것으로 여기니 참으로 고루하다. 아마 궁벽한 시골에서 수양하며 가난하게 사는 무리가 많은데, 부모가 굶주림과 추위에 떨어도 알지 못하고 처자식이 아우성 쳐도 돌아보지 않고, 두 손 모으고 무릎 꿇고 앉아 성리학을 거리낌없이 큰소리로 말한다. 어찌 사마천이 부끄럽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부모와 처자식을 먹여살리는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안된다.
"

'먹여살리는 기술'에 대해 서술한 '예규지'는 씀씀이를 관리하는 재용(財用)과 재산을 늘리는 화식(貨殖)편으로 나뉜다. 재용편은 씀씀이를 관리하기 위해 경계할 일들을 열거하고 있다. 예컨대 수입의 70%만 지출하고 나머지는 저축하라. 지출은 일별, 월별로 관리하며 세금 낼 돈은 써버리지 말라. 빚 내지 말고 임대해 사는 것을 경계하라. 목돈 드는 집짓기는 신중히 하라는 등이다. 한편 화식편에는 돈을 불리는 방법으로 수레나 배 등 운송을 잘 활용해 장사를 하고 재화는 굴려 이자수입을 얻고 토지와 집을 사들이는 방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예규지'는 돈 벌고 쓰는 데도 선비의 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산다는 상자상생(相資相生)의 철학이다. 재용편에는 경계할 일로 낭비만이 아니라 지나친 인색함도 피해야 한다고 했다. 수입의 50% 이상 과도하게 지출을 줄인다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줄 수 있다. 여유 계층이 일정 수준 이상 소비해주어야 경제가 안정되게 돌아간다. 또 어려운 사정으로 급히 물건이나 토지를 팔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값을 적절히 쳐주라고 했다. 심지어 도둑을 막는 방법은 어려움을 나누는 데 있다고 말했다. 흉년이 들어 어려운 이웃이 많을 때는 사람들을 급료를 주고 고용해 치수사업을 시키는 것이 사회불안을 줄여 도둑을 막는 최선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화식편에서도 금은보화는 가만둬서는 안되며 돈이나 곡식을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다만 지나치게 이자를 부과하는 것은 '어진 일이 아니다'라고 타일렀다. 또 부동산 거래도 "전답과 주택에는…돈이 있으면 사고, 돈이 없으면 판다.
부동산을 사는 사람은 마땅히 이 이치를 알아, 부동산을 파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부동산을 파는 것은 혹은 먹을 게 없기 때문이고 혹은 빚을 졌기 때문이고 혹은 가족의 질병과 사망, 재판, 분쟁 때문이니 그 값을 거듭 깎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인자롭지 못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윤 추구에 있어서 서구의 경제학은 무한경쟁을 강조한 반면, 조선 선비의 경제학은 더불어 사는 것도 동시에 고려해야 할 중요 덕목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호철 한국IR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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