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밥 딜런과 노벨문학상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20 17:45

수정 2016.10.20 17:45

[데스크 칼럼] 밥 딜런과 노벨문학상


노벨상위원회의 기대와 달리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밥 딜런의 노래가 불리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하다. 지난 13일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이후 벌써 1주일이 흘렀지만 밥 딜런은 아직도 그 흔한 수상소감 한마디 내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호사가 사이에선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모든 사람이 축복해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오르페우스부터 파이즈(파키스탄 시인)까지, 노래와 시는 항상 가까이 연결돼 있었다. 밥 딜런은 옛 음유시인의 후계자다"(살만 루시디.작가)라거나 "경계를 늘리는 건 좋은 일 아닌가. 노래가 문학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도 좋은 일이지 결코 열 받을 일이 아니다"(아이작 피츠제럴드.문학에디터)라며 노벨상위원회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는 이도 제법 많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허탈해하는 부류도 적지 않다. "2030년에 켄드릭 라마(힙합 가수)에게 노벨상을 주지 않으면 가만 있지 않겠다"(하리 쿤즈루.소설가)거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탔다고? 그럼 다음엔 데릭 지터(메이저리거)가 필라프 요리로 토니상(브로드웨이 연극상)을 타려나?"(롭 덜레이니.드라마작가)라는 반응은 그래도 귀여운 축에 속한다. 가장 고약한 코멘트는 '산패(酸敗)한 전립선' 운운한 영국 작가 어빈 웰시의 다음과 같은 트위터 멘션이다. "나는 밥 딜런 팬이지만, 이번 수상은 노쇠한 히피들의 산패한 전립선에서 짜낸 노스탤지어에 주는 상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흥행'을 위한 최고의 카드였지만, 위대한 문학가에게 주는 최고의 상이라는 의미에선 적절치 못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문학은 온전히 언어(문자)의 예술이어야 하고, 그것에 의한 감동을 수반하는 인간의 행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밥 딜런의 수상을 환영하며 '경계의 확장'을 거론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범주의 오류가 아닐까 싶다. 한 네티즌의 지적대로 밥 딜런의 노래가 호메로스의 시에 버금갈 정도로 위대하다고 판단된다면 문학상이 아니라 음악상을 주면 그만이다.

밥 딜런의 수상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어빈 웰시는 이렇게도 말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사전에서 '음악' 항목을 찾아보고 그런 다음 '문학'을 찾아보라. 그리고 둘을 비교·대조해보라." 요컨대 음악은 음악이고, 문학은 문학일 뿐이다.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결국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옹졸하게 문학을 너무 문자의 틀 안에 가두는 것 아니냐고 불평할 사람도 있겠지만, 밥 딜런의 노래를 문학으로 수용한다면 '위대한 영상시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도 문학이어야 하고, '한국의 밥 딜런'으로 불리는 한대수나 김민기도 문학의 이름으로 상을 받아야 한다.
'밥 딜런이 노벨상을 받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한 뉴욕타임스의 논리를 빌리자면 음악계에서 충분한 영예를 누린 밥 딜런에게 더 이상의 상은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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