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유일호式 해법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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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풀어 부동산 띄우기 폐해 커.. 실패한 정책에 끌려다니면 안돼
경제부총리가 중심 잡아줘야

불이 나서 소방차가 출동했는데 불을 안 끈다. 소방수가 물대포를 허공에 쏘아대고 있다. 정부가 최근에 내놓은 부동산 대책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부는 집값이 오르고 있는데 택지 공급을 줄여 집값을 더 오르게 했다. 서민들의 내집 마련을 돕기 위해 도입한 보금자리론도 사실상 끊었다. 투기꾼은 놔두고 실수요자만 잡는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불을 끄려 하기보다 불이 꺼질까 봐 조바심을 내는 건 아닌가.

우리 경제는 총체적 불황인데 딱 한 곳 부동산 시장만 활활 타오르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투기 억제대책인지 촉진대책인지조차 분간이 안 될 지경이다. 금융시장도 가계빚 폭증으로 불안한 모습이다.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한 42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빠르다. 총액이 공식적으로 1257조원이지만 '숨은 가계대출'(자영업자의 생계형 대출)을 포함하면 대략 150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미국이나 독일, 영국, 일본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가계빚 폭증과 부동산 과열은 일란성 쌍둥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여러 차례 대책을 내놓았지만 헛바퀴만 돌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의 시발점은 초이노믹스(전임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였다. 주택관련 대출 규제를 풀어주면서 빚을 내서 집을 사도록 권장하는 정책을 편 것이 화근이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 다른 분야로 확산돼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부동산경기가 살아나도 집값만 오를 뿐 경기확산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경환 경제팀은 초이노믹스에 계속 매달렸다. 실수라기보다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아닐까. 그는 올 초 후임자인 유일호 경제부총리에게 무거운 짐을 넘겨 주고 정치권으로 돌아갔다.

뒤를 이어 들어선 유일호 경제팀이 정책의 기본 틀을 바꾸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실패한 초이노믹스에 미련이 남아서일까. 아니다. 경제 전문가인 유 부총리가 초이노믹스 실패를 감지 못했을 리 없다. 정부가 부동산에 물린 것이다. 초이노믹스를 버리면 성장률이 연간 3.3%에서 1.6%로 반토막 난다는 것이 산업연구원의 분석이다. 전임자의 정책 폐기비용이 너무 커지면 후임자는 그 정책이 잘못됐더라도 끌고 갈 수밖에 없다. 초이노믹스가 민폐를 끼치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투기광풍을 계속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성장절벽을 감수하고 투기 차단에 나설 것인가. 유일호 경제팀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런데 선장이 제때 결정을 내려주지 않으니 선원들이 방향감각을 잃고 허둥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부동산 대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이나 노동.공공개혁은 물론이고 저고용.저성장 등 현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어느 한 곳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선장 없이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방황하게 놔둘 수는 없다.
위기 국면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제시해 동력을 한 방향으로 결집시켜야 한다. 그 책임이 유 부총리에게 있다. 투기꾼이 득실거리는데 빚 내서 집 사라고 권장하는 정책을 계속 끌고갈 수는 없지 않을까. 한국 경제에 닥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호식 해법을 듣고 싶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