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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블랙홀에 빠진 한국 경제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26 17:03

수정 2016.10.26 17:03

대통령도 국회도 '나 몰라라'
경제 위기 불감증 심해질 듯.. 활성화대책 동력 상실할 우려
[이재훈 칼럼] 블랙홀에 빠진 한국 경제

지난 24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내게는 느닷없는 개헌 제안보다 박 대통령의 경제 상황 인식이 더 충격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계획의 성과로 대한민국이 창업국가로 변모하고 있으며 경제구조가 '역동적인 혁신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했다. "4대 부문 구조개혁의 성과가 윤곽을 드러내며 우리 경제의 기초가 보다 튼튼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과 성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화자찬이야 늘상 있는 일이지만 이번엔 그런 차원을 넘어 인식의 급변이라 할 만하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도입으로 공공개혁이 본궤도에 올랐고 크라우드 펀딩, 계좌이동제 도입, 핀테크 등으로 금융개혁도 물꼬를 텄다고 했다.
실상은 어떤가.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파업이 계속되고 있고 교육개혁의 핵심인 대학 구조조정은 삐걱대고 있다.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법.파견근로법 등 노동개혁 입법은 국회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4대 개혁이 잘 되고 있다니 황당할 밖에.

박 대통령은 원래 이런 낙관론자가 아니었다. 경제와 민생을 살려야 하는데 잘 안된다며 조바심내는 스타일이다. 얼마 전 장차관워크숍에서는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짧은 시간이 3년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가 아닌 '삼추가 여일각'처럼 조급한 마음이 드는데 우리 정치는 시계가 멈춰선 듯하다"며 관료들에게 민생현안 해결을 위한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가 국회와 여야에 주문하는 '단골 메뉴'는 경제활성화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정연설에서는 그런 주문이 싹 사라졌다. 지난해 시정연설에서는 전혀 달랐다. 박 대통령은 당시 4대 개혁 과제를 자세히 열거한 뒤 노동개혁 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등 경제.민생법안을 처리해달라고 누차 당부했다.

개헌 제안 연설을 보면 인식 변화의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계획, 4대 구조개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지만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이런 정책, 개혁만으로 타파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개헌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개헌론이 나올 때마다 "지금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라며 '경제 블랙홀론'을 들어 거부해왔다. 결국 박 대통령은 자기모순을 피하기 위해 '경제는 이쯤하면 됐으니 이제 개헌을 할 때다'는 논리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나는 대통령의 판단이 경제위기 불감증을 부를까 두렵다.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는 '개헌 블랙홀'마저 '최순실 블랙홀'에 빨려들 것 같은 분위기다.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될지 여부와 관계없이 경제는 이미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최순실 때문이건 개헌 때문이건 시급한 경제 현안들이 관심 밖으로 밀려날 게 뻔하다.

정기국회에서 예산 및 예산 부수 법안의 심의가 시작됐지만 순탄하게 진행될 것 같지가 않다. 정쟁에 정신이 팔린 국회가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법, 규제프리존법 등 경제활성화법을 제대로 들여다보기나 할지 의심스럽다. 20대 국회가 개원 넉달 만에 발의한 시한폭탄 같은 규제강화 법안이 530여개에 달하는데 어떻게 처리될지 알 수가 없다. 우리 경제는 4분기 연속 0%대 성장을 했고 소비.투자. 수출 모두 부진하기만 하다.


유일호 경제팀이 현안들을 타개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순둥이' 유 부총리는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에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가계부채.부동산 대책에서는 '결정 장애'를 겪는 중이다. 과연 소는 누가 키우고 경제는 누가 살릴 것인가.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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