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그래픽을 통해 본 한국사회(2)]

"나의 직업은 대학교 5학년생" 취업난에 졸업 미루는 청춘들

원치않는 창업으로 온라인 창업카페 질문 늘어나고
숙박.식당 20대 취업자도 급증
일자리 대책은 부실, 中企 청년인턴제도 등 유명무실
체계적 직업훈련 등 대안 마련을.. 너무 높은 취업문턱

대학생 이하영씨(25·가명)는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을 5학년으로 소개한다. 잔여 8학점만 채우면 4년제 대학 정규과정을 모두 이수하게 되지만 취업용 스펙을 쌓기 위해 마지막 학기에는 5학점만 듣고 3학점은 다음 학기에 이수하기로 했다. 이 경우 졸업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자동으로 졸업이 연기된다. 이번 학기 강의는 모두 남들이 기피하는 1교시 수업으로 잡았다. 오후에는 일주일에 세 번씩 영어말하기 스터디와 면접 스터디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씨는 "학교 취업상담센터에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첨삭 받았지만 마땅히 남들보다 뛰어난 경험이나 스펙이 없다는 지적에 고민이 컸다"면서 "4년 만에 '칼졸업'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졸업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1년 8270여명이던 졸업예정자는 2014년 1만8570명으로, 3년 새 두 배 이상 급증했다. 2013년 기준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44.9%가 졸업유예자에 해당된다.

극심한 취업난에 대학생들이 각종 인턴, 토익, 자격증, 공모전 등 정량화하기 쉬운 스펙 쌓기에 안간힘을 쓰면서 졸업을 미루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또 대기업에서 졸업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정설처럼 굳어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올해 대학생 1264명을 대상으로 졸업시기 조정 의사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6.3%가 '졸업시기 조정 없이 정상 졸업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졸업을 연기할 것'이라고 답한 대학생은 36.9%에 머물렀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졸업시기를 미루겠다고 답한 학생 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1학년 응답자 중 '졸업연기'를 택한 비율은 21.8%에 그쳤지만 4학년은 졸업지연을 생각하는 비중이 47.5%로, 1학년의 두 배에 달했다. 응답자들은 졸업유예 사유로 외국어 공부 및 공인점수 취득(44.4%), 주요 자격증 취득(32.5%), 인턴 등 경력관리(32.1%) 등을 꼽았다. 졸업시기가 점차 늦춰지면서 청년층이 졸업 후 첫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약 11개월(통계청 조사)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정승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대학평가, 전공, 지역 등 학교변수만 감안할 때 실업률이 0.1%포인트 상승하면 졸업유예율은 1.4%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전체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대학생들이 졸업시기를 늦추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얼어붙은 취업시장

'N포세대'(연애·결혼·출산 등을 포기한 청년세대),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 현재 우리나라 청춘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웃지 못할 신조어다.

지난해 우리나라 청년(15~29세) 실업률은 9.2%를 기록했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시름하던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청년 구직자 10명 중 한 명꼴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셈이다. 지난 2월에는 12.5%까지 청년실업률이 껑충 뛰는 등 청년실업률은 거의 매월 최고치(월별 기준)를 갈아치우고 있다. 아직까지 절대적인 수치는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1.6%)보다 낮지만 2013년 이후 3년 연속 청년실업자 수는 증가하고 있다.

특히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직장을 구하거나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 등이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잠재경제활동인구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청년들이 체감하는 취업시장은 더욱 냉혹하다.

어렵사리 취업의 문턱을 넘어도 비정규직, 인턴, 단기계약직 등 질 낮은 일자리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신규채용 청년층(15~29세)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64%로, 6년 전인 지난 2008년(54%)보다 10%포인트나 높아졌다. 고용의 질이 저하되면서 가구주가 39세 이하인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지난해 월평균 소득은 431만6000원으로 전년 대비 0.6% 감소했다. 20~30대 가구의 소득이 감소한 건 2003년 가계동향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 공무원에 몰리는 청춘

서울 소재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어렵사리 무역회사 취업에 성공한 박영환씨(32·가명)는 지난 2013년부터 2년간 해외영업부서에서 근무해왔다. 하지만 부서 특성상 과중한 업무에 따른 잦은 야근과 상사의 폭언을 견디다 못해 지난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박씨는 봉급은 적지만 안정적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9급 공무원시험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퇴사 직후 본 첫 시험에서 필기시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박씨는 "시험을 준비하기 전에는 짧게는 1년 안에 합격한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은근히 '쉽게 합격할 수 있겠다'며 만만히 본 것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주위에 재수, 삼수는 기본이고 몇 년간 공부만 하는 장수생을 보게 되니 저절로 마음이 조급해지는 걸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가끔씩 다시 일반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건 어떨까 생각은 해봤지만 이미 나이가 찬 데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으로 눈을 낮추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4월 9일 전국에서 국가공무원 9급 필기시험이 일제히 치러졌다. 접수자 수만 22만여명으로, 경쟁률이 53.8대 1에 달했다. 공무원시험 역사상 최대 규모다. 20대 수험생이 14만2002명으로 전체의 63.8%를 차지한 가운데 30대도 6만6779명이 응시하며 전체 30.0%를 차지했다. 9급 공무원 접수자는 지난 2010년 14만1342명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14만2732명, 2012년 15만7159명, 2013년 20만4698명까지 매년 오름세를 보이다 2014년 16만4887명으로 잠시 증가세가 꺾였지만 1년 만인 지난해 19만987명으로 다시 증가세를 이어갔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층의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준비생은 62만2000명(13.1%)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0.8%포인트 올랐다. 특히 일반직공무원 준비생은 39.3%로 1년 전보다 3만5000명(4.4%포인트) 늘어났다. 행정고시, 임용고시, 공기업 준비생이 빠진 수치임을 감안할 때 대다수가 7급 또는 9급 공무원 응시자인 셈이다.





■ 구직난에 '도피처' 된 창업

최근 몇 년간 국내 대형 포털사이트의 창업 관련 온라인카페에는 20~30대의 창업 관련 질문이 부쩍 늘어났다.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지면서 대안으로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청년층이 증가한 것이다. 특히 카페, 음식점 등 자본이 크게 들어가지 않는 요식업종 창업에 관한 질문이 상당수다. 하지만 이미 포화상태인 요식업에서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취업 한파 속에서 창업이 일종의 도피처가 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숙박.음식점업 20대 취업자는 1년 전보다 3만1000명 증가했다. 지난해 20대 전체 취업자 증가 폭이 6만800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숙박.음식점업 취업자 중 절반이 20대 청년층인 셈이다. 구직난에 시달린 청년층이 상대적으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데다 소규모 창업이 가능해 진입장벽이 낮은 외식산업으로 몰린 탓이다.

■ '쳇바퀴' 도는 청년 일자리 대책

이처럼 청년실업률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정부가 수조원을 투입하는 청년 일자리 대책엔 매번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단기 효과에만 치중한 엇비슷한 정책이 사실상 이름만 바꾼 채 정권마다 재탕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마저도 꼭 필요한 부문엔 예산이 제대로 투입되지 않거나 당초 계획된 정책 의도대로 추진되지 않고 '헛발질'만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제 인턴을 채용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 등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중소기업 청년인턴 정책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 2011~2013년 이 정책으로 채용된 청년인턴의 정규직 전환율은 90%를 넘었다. 하지만 정작 고용유지율은 57%(지원금 중단 6개월 후), 46%(1년 후), 37%(1년 반 후) 등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떨어졌다. 사실상 정부 지원금으로 단기 일자리만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을 위해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학의 진로 선택 및 취업지원시스템을 강화하는 한편 졸업시점을 기준으로 한 기업의 차별 채용관행을 막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완화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안정적 청년고용 대책을 펼치는 것으로 평가받는 독일은 체계적 직업교육훈련 시스템을 갖춰 취약계층에 고용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프로그램 설계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기업, 상공회의소, 노동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가운데 능력과 적성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직업교육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하는 청년층에게는 추가 훈련 기회도 제공한다. 실업상태에서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층을 일컫는 '니트(NEET)족' 발생을 막기 위한 조치다. 무엇보다 독일 정부가 2003년부터 사회보장시스템을 개혁하는 등 노동시장 개혁조치를 꾸준히 추진한 것도 고용안정을 가져온 요인으로 꼽힌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