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권력과 시장

최근의 혼란스러운 정국과 관련해 필자가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노무현이 틀렸다'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한 회의에서 '권력은 이제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해당 발언에 대해 여러 해석이 분분했는데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시장(또는 기업)의 힘이 커져 이제는 정부의 통제가 쉽지 않다'라는 요지로 이해했다. 하지만 현 시국과 관련해 계속되는 폭로와 드러나는 증거를 보면 정치권력 또는 이를 앞세운 세력들에 의해 시장이 철저히 유린당한 상황이다. 그러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단은 틀렸다고 할 만도 하다.

사실 시장 그 자체는 '권력'이라는 단어와 부합되지 않는다. 시장은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거래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시장거래는 경제활동의 한 방식이기 때문에 권력관계에서 의미하는 주종의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시장참가자 모두가 시장을 통해 얻는 이익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기업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도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 또는 서비스에 만족하는 소비자가 많아진다는 것이며 기업도 소비자의 선택에 힘입어 성장한다는 것이다. 정경유착을 통한 기업의 권력화를 흔히 언급하지만 이도 권력을 가진 세력에 기업이 편승해 이득을 취하는 편법에 해당하지 기업 그 자체가 권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그랬고 현재에도 권력은 정치세력에서 나온다. 미래에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제도하에서 공인되는 권력은 선거를 통해 그 지위를 획득하며 선출된 권력이 정부를 구성한다. 이 선출된 권력은 선거를 통해 바뀌기 전까지는 여러 법적.제도적 장치를 통해 사회 구성원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이 영향력에는 '강제성'도 포함된다. 만약 권력이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그 권력을 구성하는 (일부) 세력의 이익을 위해 시장에 개입한다면-그것이 불법적이든 합법적이든-시장의 상생기능은 파괴된다. 거래의 자발성은 훼손되고 어느 쪽의 이익은 다른 쪽의 손해로 이어져 제로섬 게임이 되어 버린다.

문제는 권력이 사사로운 목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때 그 목적이 '선의'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선의를 사전에 검증하기도 어렵고 검증한다고 해서 권력의 의지를 꺾기도 쉽지 않다. 또는 시작은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진행과정에서 권력에 발을 담근 제(諸) 세력의 이해가 투영돼 변질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많이 보아온, 역대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한 각종 국책사업들이 정권 임기 말에 가면 각종 부패 스캔들로 점철되는 경우가 이 경우일 것이다.
따라서 권력에 의한 또는 선출권력을 대표하는 정부에 의한 시장개입은 그 의도와 관계없이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시장개입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다른 대안은 없는지 먼저 검토돼야 하며 제도적으로 이 과정이 보장돼야 한다. 그리하여 정부에 의한 시장개입이 공공의 이익을 위함이 명확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진다면, 그리고 그런 문화가 보편화된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같은 혼란이 향후 재발할 가능성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