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미국 주류 언론사의 반성문

서혜진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1."우리 회사를 비롯해 다른 언론사들은 트럼프 지지자들과 완벽하게 접촉하지 못했거나 트럼프 지지자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난 그들(트럼프 지지자들)이 단순히 미쳤거나 개탄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몇 년간 우리가 다뤄야 할 가장 큰 얘기들 중 하나는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뒤처졌다고 느끼는 노동계층 유권자들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딘 바케트 뉴욕타임스 편집국장)

#2."언론은 맨 처음부터 무엇이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가정을 많이 세웠지만 이 가정들은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어떤 일이 선거에 극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가정하기 전에 우리는 더 취재하고 더 많은 사람과 얘기해야 했습니다. 트럼프가 후보가 되기 전에 미국 노동계급의 불만과 불안의 깊이를 잘 감지했어야 했습니다."(마틴 배런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

#3."엘리트와 그 외 사람들 간의 차이에 더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관해 기사를 작성하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일부 사람에게 주류 언론은 엘리트의 기둥으로 비치기 때문입니다."(질 에이브럼슨 전 뉴욕타임스 편집장)

도널드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의 대표적 주류 언론인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가 내놓은 반성문이다.

대다수의 미국 언론은 지난 8일 대선 당일 개표 직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거의 확신했다. 클린턴의 당선확률을 NYT는 84%, 허핑턴포스트는 98%로 봤다. 그러나 개표 결과 플로리다.위스콘신.미시간 등 주요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앞섰던 지역 대부분을 트럼프가 싹쓸이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미 언론은 큰 충격에 빠졌다. 여성 대통령을 뜻하는 '마담 프레지던트(Madame President)'라는 제목에 클린턴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표지사진으로 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대선 특집호가 대선 전날 미국 대형 서점과 가판대에 배포됐다가 전량 회수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대선 결과가 예상을 빗나간 이유를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중 미 언론이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언론기관들이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었다는 점과 미국 노동계층이 얼마나 깊게 분노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바케트 NYT 편집국장의 말처럼 미 언론은 트럼프와 트럼프 지지자들을 '상식에 어긋난' '정신나간' 집단으로 바라봤다. 트럼프의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여성과 무슬림 및 장애인 비하, 같은 당 지도부에 대한 지지거부 협박, 음담패설 등 상식을 벗어난 언행이 계속되자 미 언론은 트럼프의 정신상태까지 의심했다.

언론뿐이 아니었다. 민주당과 각 분야 전문가들, 심지어 공화당 지도부도 트럼프가 도를 넘었다고 비난했고 클린턴은 "트럼프 지지자의 절반은 개탄할 만한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들은 투표를 통해 대침체 이후 40년간 쌓아왔던 분노와 좌절을 제대로 보여줬다. 국제 무역협정 등을 통해 빠르게 진행되는 세계화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월급은 줄어들었다.
몰려드는 이민자 때문에 자신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약해지고, 제조업과 광산업 등으로 힘들여 얻은 경제적 과실은 월가와 소수 부유층에게 집중됐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들의 분노와 박탈감은 결국 트럼프의 '비상식'을 덮어버리고 그의 백악관행을 결정지었다.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느라 기성 제도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놓쳤음을 인정하고 있는 미 언론. 이런 자성의 목소리가 트럼프의 4년 임기 동안 그리고 차기 선거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sjmary@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