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fn논단] 통치자는 도덕의 곳간부터 열어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1.21 17:13

수정 2016.11.21 17:13

[fn논단] 통치자는 도덕의 곳간부터 열어야

길흉화복을 보는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은 포천 현감 시절, 선조 임금에게 '제왕이 가진 세 가지 곳간'을 열라는 상소를 올렸다. 첫째, '민심인 도덕의 곳간'이다. 통치자가 바른 법칙을 세워 솔선수범한다면 백성은 책임을 다해 이를 따를 것이다. 둘째, '정부의 인재의 곳간'을 열라고 했다. 공정한 인사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면 정사는 바르게 돌아갈 것이다. 마지막은 '육지와 바다라는 자원의 곳간'이다.
국가 자원을 마음껏 이용하게 한다면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한없이 클 것이다. 그러나 역대 제왕들은 도덕의 곳간은 사사로운 욕심으로, 인재의 곳간은 간사한 신하들로, 자원의 곳간은 샘하고 질투하는 무리들로 인해 열지 못했다고 간언했다.

끊임없는 사화로 정치에 환멸을 느낀 이지함은 일찍이 과거를 포기하고 사대부로는 특이하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다. 그런 그가 56세 되던 1573년 재야의 덕망 있는 선비로 천거되어 포천 현감에 임명됐다. 그런데 산지가 많고 토지가 척박해 풍년이 들어도 굶주림을 면치 못하는 포천 현민들의 비참한 실상을 보고 그는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상소문에는 '세 가지 곳간' 외에 '말업인 상공업으로 본업인 농업을 보완하라'는 '본말상보론(本末商補論)'이 들어 있다. 유교 국가 조선은 농본상말(農本商末)의 경제체제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질서를 국가의 기본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지함은 농업뿐 아니라 상공업과 어업, 광업 또한 나라와 백성을 부유하게 해 이로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곡식을 생산하는 농업이 근본이라면 소금을 굽고 철을 주조하는 일은 말단입니다. 그래서 근본인 농업으로 말단인 상공업을 제어하고 말업인 상공업으로 근본인 농업을 보충한 연후에야 모든 재용이 궁핍하지 않게 됩니다."

그는 포천 현민을 구제할 방안도 제시했다. "어업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전라도 만강현에 양초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나라와 개인이 소유하지 않은 섬입니다. 이 섬을 임시로 포천현에 소속시켜 고기를 잡아 팔아 곡식을 사들인다면 몇 년 안에 수천 섬의 곡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황해도 풍천부 근방의 초도에 염전이 하나 있습니다. 이 섬 역시 나라와 개인이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이 섬을 임시로 포천현에 소속시켜 소금을 구워 팔아 곡식을 사들인다면 몇 년 안에 수천 섬의 곡식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지함은 자신의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곧 사직했다. 1578년 다시 아산 현감에 임명되자 이지함은 이번에는 직접 걸인청을 만들었다. 그는 젊고 튼튼한 거지들은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거나 배를 타고 나가 고기잡이를 하게 시켰고, 손재주 있는 자는 도구를 마련해주어 수공업에 종사토록 했다.
이것도 어려운 자에게는 짚신을 삼거나 새끼 꼬는 일을 가르쳐 자립을 이끌었다.

이지함은 덕으로 백성을 평안하게 하고 농업 외 상공업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부국안민(富國安民)'의 개혁안을 제창했지만 조정은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데 이어 병자호란 등 국난은 계속되었다.

이호철 한국IR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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