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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민주적 판사와 국민의 눈높이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1.22 17:05

수정 2016.11.22 17:05

[여의나루] 민주적 판사와 국민의 눈높이

안정적으로 장기집권에 성공한 이웃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맞아 발빠르게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는데, 우리는 대통령 퇴진과 탄핵의 목소리로 큰 소용돌이에 휩싸여 나라 안 문제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지만 여전히 권위적 대통령제와 분식적 민주주의에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고, 인기영합적인 정치적 수사와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있다. 현실을 예리하게 진단하고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면서 이 혼미의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지도자가 그립다.

올해 터키 비상사태에서 민주화 관련 판사와 기자들이 구금되는 것을 보면서 독재와 부패의 파수꾼은 바로 언론과 법원임을 깨닫게 된다. 민주와 법치가 위협을 받는 난국일수록 기자와 판사는 현실을 제대로 보고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특히 난제들이 사법부로 몰려가기 마련이라 법원은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야 한다.
홈즈 대법관 말처럼 '인간은 그 시대 사회의 아들'일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그 시대 그 사회의 흐름에 발맞추어 살아가야 하고, 판사 역시 공동체의 일반적 법 확신이 무엇인지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재판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핵심이다.

독일 시인 브레히트가 1943년 미국 망명 시절 쓴 '민주적인 판사'란 시가 있다. 이탈리아인 식당주인이 세 번이나 미국 시민권을 신청했다가 떨어졌는데, 그는 판사의 국어지식에 관한 질문에 매번 '1492년'이라고만 답한 것이다. 네 번째 신청에서 판사는 그가 노동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연도를 물었고, 1492년이라고 여일하게 답한 그는 마침내 시민권을 땄다는 내용이다.

독일 바이에른주에서는 직업법관이 아닌 고등학생들이 초등학생들의 사소한 비행에 대해 심리, 처분을 하였는데, 언론에서는 그들을 '운동화 신은 판사'라고 명명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비행 초등학생 사정을, 이미 웬만큼 갖추어진 생활을 하는 연령 차이 많이 나는 판사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또 그 아이에게 맞는 적절한 제재조치를 강구하지 못한다는 고려에서 운영된 것이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된 촛불집회 참가자는 지난 12일 주최측 추산 100만명, 19일 주최측 추산 60만명에 달했다. 12일 개최된 광화문 집회에서는 사상 최초로 청와대를 목전에 둔 내자동 네거리까지 집회 및 시회가 허용되었다. 판사 결정의 단초는 판결문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첫 구절에 있었다.

집회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되었고,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이루어진 점, 그동안 평화롭게 진행하면서 집회 참가인들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 등에 비추어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시위 주체와 항의 대상 간에 훨씬 잘 보이고 들릴 수 있는 위치로 근접시킨 것이다. 사법부의 판단, 평가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의 근간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을 느끼게 하는 결정이다

독일 기본법 전문에는 '신과 인간에 대한 책임'이 헌법정신으로 되어 있다. 이는 바로 '네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인간을 이웃으로 사랑하는' 자세로 헌법을 섬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기본법에서 '국민의 이름으로 판결을 내린다'고 되어 있다.
권력의 수탁자인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판사도 국민의 하인이다. 결국은 주인인 국민을 위하여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하면서 국가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자신의 권력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항상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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