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SKT-헬로비전 M&A 무산에 대한 억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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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계 사람들을 만나면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를 한다.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한다. 비선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이 매일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뉴스프로그램이 어떤 드라마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란다.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괜한 억측을 꺼내들게 됐다. 방송통신 분야 기자로서 올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에 참 많이 관심을 가졌었다. M&A가 성사되면 우리나라 방송통신 시장에 꽤 긍정적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던 일이기도 하다. 물론 공정거래위원회가 M&A를 불허하면서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7개월 이상 진행된 정부의 M&A 심사 과정을 취재하고 기사 쓰면서 아무래도 맞춰지지 않는 퍼즐이 있었다.

지난 5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M&A에 대한) 공정위 심사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불만을 공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사기간이 법률에 정해진 시한을 넘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길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상했다. 한 사안을 두 개 이상의 부처가 공동으로 심사하는 사례들을 아무리 뒤져봐도, 한 부처의 수장이 파트너인 다른 부처를 향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3월 말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실무부서에서 경쟁제한성 검토를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며 "조만간 심사보고서가 나갈 것"이라고 심사일정을 귀띔했다. 두 수장의 발언을 맞춰보면 4월쯤 공정위의 심사보고서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5월에도 심사보고서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7월 공정위는 M&A 불허를 발표했다. 그런데 불허의 명분이 의외였다. 이미 시장에서는 의미가 사라진 케이블TV 권역 내 독점 우려가 불허의 명분이었다.

지속적으로 케이블TV의 권역 폐지를 정책방향으로 제시했던 공정위가 돌연 권역 내 독점을 문제 삼는 것은 M&A 불허를 위한 억지 명분 만들기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과정도 결과도 이상하리만치 퍼즐이 안 맞춰졌다. 그런데 최순실씨 사건이 공개되면서 요상하게 퍼즐이 맞춰진다.

최씨가 관여한 K스포츠재단이 2월부터 4월 사이 SK그룹을 향해 80억원 투자를 요구했다고 한다. SK그룹은 이를 거절했고, 최종 투자제안이 무산된 시점이 5월로 추정된다.


'비선실세가 요구한 투자를 SK그룹이 집행하지 않으면서 M&A는 무산'…. 이것이 맞춰진 퍼즐의 모습이다.

억측이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경제검찰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공정위가….

내년 이맘때 1년 전 괜한 억측을 했던 것이 미안해지도록 사실이 가려지기를 바란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