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임팩트 투자' 새로운 실험] 공익·이윤 모두 잡을 ‘적정기술’.. 사회적기업의 ‘등불’ 되다

김가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1.23 17:52

수정 2016.11.23 21:59

(4)‘적정기술’소셜벤처 혁신의 심장
소외된 신흥국·저소득층 대상
딜라이트 30만원대 보청기 같은 사회적 가치.이윤 추구 실현 가능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대부분 일자리·서비스제공만 매달려 정부 지식 공유 등 혁신 시급
#. 지난 1월 미국 최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 양초를 덮은 항아리 모양의 발광다이오드(LED) 램프 하나가 올라왔다. 두 달도 채 안돼 1100여명으로부터 모은 펀딩 액수만 13만3000달러(약 1억6000만원). 당초 목표했던 5만달러의 3배에 달하는 액수다. 전기나 배터리 같은 외부 전원 없이 촛불만으로 작동하는 LED 램프를 개발한 곳은 우리나라의 루미르다. 램프를 양초에 덮으면 촛불의 수십배에 달하는 불빛을 뿜어낸다. 램프의 양면의 온도차를 달리해 양초에서 나오는 열을 전기로 바꾸는 원리다. 저개발국을 돕기 위해 출발했던 촛불램프에 대한 해외 바이어들의 문의가 이어지면서 루미르의 매출은 지난해 7억여원에 이어 올해 10억원 달성이 기대되고 있다.
['임팩트 투자' 새로운 실험] 공익·이윤 모두 잡을 ‘적정기술’.. 사회적기업의 ‘등불’ 되다

['임팩트 투자' 새로운 실험] 공익·이윤 모두 잡을 ‘적정기술’.. 사회적기업의 ‘등불’ 되다

['임팩트 투자' 새로운 실험] 공익·이윤 모두 잡을 ‘적정기술’.. 사회적기업의 ‘등불’ 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사회적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윤추구'보다 '사회적 이익' 달성을 우선 과제로 삼는 사회적기업의 특성상 스스로 이윤을 창출하며 지속성장하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 이에 적정기술을 보유한 혁신적 소셜벤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지역사회의 눈높이에 맞춘 인간친화적인 적정기술로 저렴한 제품을 개발.판매해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어서다. 아직 우리나라 적정기술 수준이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 만큼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착한 기술'로 사회문제 해결

토착기술과 고도로 첨단화된 기술 중간에 위치하는 적정기술은 기술의 수혜에서 소외된 저개발국과 저소득층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이른바 '착한 기술'을 의미한다. 낮은 가격(경제성), 편리한 사용(조작성), 현지환경 적응(특수성), 현지자원 활용(가용성) 등이 적정기술의 조건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 없이는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외부 의존도가 높다.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와 서비스 제공에 집중하다보니 차별화된 기술력을 갖춘 사회적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적정기술'이라는 키워드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국가와 계층 간 균형 발전과 불평등 해소를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적정기술의 의의나 범위 등도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점차 적정기술이라는 개념을 갖추고 수익성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는 소셜벤처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동대 그린적정기술연구협력센터을 비롯해 나눔과기술, 국경없는과학기술자회, 서울대, 한밭대 적정기술연구소 등 국내 여러 산학민관에서 적정기술과 관련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국내 토종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는 반나절 동안 태양에너지를 충전하면 플래시 메모리 카드에 저장된 동영상을 상영할 수 있는 '햇빛영화관'을 비롯, 적정기술에 기반한 비즈니스 사업모델이 투자자들의 펀딩을 기다리고 있다.

적정기술을 연구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고 있는 한동대 그린적정기술연구협력센터장 한윤식 교수는 "일시적 원조가 아닌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적정기술로 만든 제품이 보급되는 곳에 비즈니스가 될 수 있도록 기업가 정신을 결합하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적정기술을 보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적기업의 형태"라고 말했다.

■적정기술, 사회적기업의 '심장' 되다

지난 2010년 초반에 노인용 보청기를 만든 딜라이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적정기술 기업으로 꼽힌다. 딜라이트는 갈수록 심화되는 고령화로 인해 난청인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기존에 존재하던 보청기 가격이 너무 높아 저소득층 난청 노인들이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문제에 주목했다.

200개 이상의 귓구멍 모양 표본을 구해 평균값을 내 맞춤생산 방식의 표준화를 달성하며 가격을 낮췄고, 업계 최초로 온라인 사전예약제도를 통한 공동구매 방식과 전화판매를 도입해 불필요한 유통관리비용을 줄여나갔다. 딜라이트는 이 같은 가격 절감 과정을 통해 기존 150만~200만원대에 이르는 외국 보청기들이 선점한 국내시장에서 30만원대 보청기를 출시했다.

1년 중 8개월간 기온이 영하 20~40도까지 떨어지는 몽골에선 '게르'(몽골식 전통가옥)가 추위를 막아주는 유일한 안식처다. 하지만 연료로 쓰이는 유연탄은 열효율이 낮아 지속성이 짧고 가격까지 비싸 가난한 몽골 주민들에게 큰 부담이다. 특히 매연이 심해 천식 질환을 앓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해 개발된 한국의 적정기술 1호 지세이버는 기존 난로의 연통에 간단하게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연소를 높이고 열도 평소보다 2배 이상 오래 보존하게 하는 친환경 난방장치다. 한국식 온돌의 개념에 기초한 축열기를 기존의 몽골 난로에 부착해 연료 소모량을 40% 이상 줄이면서도 동등한 수준의 난방을 할 수 있게 고안됐다. 새로운 난방기구를 구입하거나 교체하지 않고 기존 난로 위에 부착하는 것만으로 열효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저렴한 가격뿐 아니라 몽골 현지인이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관련된 사후서비스도 제공한다. 재료도 맥반석과 진흙, 산화철 등 몽골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2008년 5월 1인 기업으로 설립된 에너지팜도 적정기술에 투자를 쏟고 있는 대표적 사회적기업이다. 자전거발전기, 태양열조리기, 소형풍력발전기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기와 배터리 등 재생에너지 관련된 제품의 생산 및 설치시공을 전문으로 한다. 특히 쉐플러 태양열시스템, 태양광발전설비, 소형 풍력발전기의 개발과 보급을 통해 취약지역의 취사, 난방, 병원, 공장 등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일에 역점을 둔다. 전체 순이익의 20%가량은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적정기술 생태계 조성 시급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 대부분은 국가인증시스템을 통해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와 서비스 제공을 위한 주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수익을 얻음으로써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기업 본연의 목적과 가치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 사회적기업의 양적인 성장에도 사회적기업이 담당하고 있는 질적인 영역은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적정기술을 활용한 기술집약적 사회적기업이 시장에서 지속성장하고 성공하기 위한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선 일반 기업뿐 아니라 정부출연 연구소 등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재산을 제공해 기술집약적 사회적기업 설립에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예컨대 기술이전설명회 및 온라인 기술정보거래시스템 등을 통해 사회적기업을 발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금조달 과정에서는 소셜벤처를 대상으로 자금을 대는 임팩트 투자를 비롯한 금융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기 위해 개방적 적정기술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비자의 잠재적 니즈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사회적 혁신까지 구현해낼 수 있는 적정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황자운 연구원은 "기술집약적 사회적기업의 성공적인 안착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술개발 정책, 교육, 금융, 법 등의 하부구조의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 지원정책의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박지영 장민권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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