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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세금 아닌 세금 같은 '준조세'

김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1.25 17:54

수정 2016.11.25 17:54

[여의도에서] 세금 아닌 세금 같은 '준조세'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최근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는 '썸'이라는 제목의 노래의 가사 일부다. 이 노래가 인기를 끈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사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명 '썸'을 타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에 애가 타는 연인들의 상황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들이 '준조세'를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할 것 같다. 사전적 의미의 준조세는 세금은 아니지만 세금처럼 납부해야 하는 부담금을 뜻한다. 개념이나 범위에 대해서는 통일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지만 광의의 준조세는 법령상 근거를 두고 부과되는 법정부담금과 법령상의 부담 의무는 없으나 사실상 부담이 강제되는 기부금.성금 등의 비자발적 부담을 포함하고 있다.
세금은 아니지만 결국은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국내 대표그룹들은 말 그대로 준조세로 사면초가에 놓였다.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성금을 낸 배경에 의혹이 짙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재단에 성금을 낸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그룹 총수도 검찰에 불려가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 다음달 5일로 예정된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도 참석해야 하는 처지다.

준조세를 통해 정권에 잘 보이고 이득을 챙기려 했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필요하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혐의가 드러나면 철저하게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준조세를 낸 모든 기업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부가 직접 기업 CEO를 만나 좋은 일에 사용하겠다고 협조(?)를 부탁한다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 이명박정부 시절 연평균 15조원이던 준조세 규모는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17조6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준조세로 인한 폐해는 이전부터 제기된 문제다. 새 정권이 탄생하면 그 나름의 업적 달성을 위해 의욕적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기업. 세금으로 사업을 진행하자니 국민의 시선이 두려운 반면 기업들은 협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사회공익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업적 달성을 위해 자발적인 것으로 가장해 억지로 동원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준조세의 부정적 효과가 드러나며 폐지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사정의 칼날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고, 정치권은 기업의 준조세가 다음 정부부터는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에서는 '준조세 청탁금지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말 바꾸기를 쉽게 하는 정치권을 믿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믿어보고 싶다. 이번에 문제가 생길 여지를 원천 봉쇄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후 정권 교체기에도 다시 게이트가 나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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